의학교육 전문가들 "의학대학원 운영, 이제는 개혁해야”

[청년의사 신문 양영구] 박사학위가 필요한 개원의들이 대학원 발걸음이 뜸해지자 그 자리를 전공의들이 채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과거에는 학위가 필요한 개원의들이 대학원에 들어와 등록금만 내고 편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해왔지만 지금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대학원에 등록하는 개원의들이 줄어들자 대학원 운영을 위해 전공의들에게 등록을 권유하는 교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학교육 전문가들은 의학대학원 운영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지난 25일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임상의학 학위제도 개선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고려의대 내과학교실 김병수 교수는 ‘우리나라 임상의학 학위제도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김 교수는 국내 의과대학 졸업 후 연구교육이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에서는 임상진료와 대학원 또는 연구 교육제도를 엄격하게 분리해 운영함으로써 전일제 연구를 하지 않는 한 박사학위 과정에 진입할 수 없다.

영국과 미국 등은 중개연구 교육과정의 적극적인 교육을 행하면서 현대적 개념의 기본적 연구방법론과 설계, 연구결과의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육을 학부생 뿐 아니라 전공의에게도 행하고 있다.

또 미국의 경우 NIH를 중심으로 연 4,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중개연구 전문가 양성 혹은 학위과정 등의 연구교육에 투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가 21세기 성장동력으로 제시한 의료산업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연구수행이나 시설, 장비 등의 하드웨어 지원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HT R&D를 창조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산업화와 연계시킬 역량을 지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임상의학 학위과정 개혁을 통한 인재양성이 최우선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에 이은 패널토의에서는 우리나라 의학계가 안고 있는 졸업 후 의학교육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실날한 비판이 이어졌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의학대학원의 교육체제를 개혁해야 될 시기가 됐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임상의학 학위제도를 차라리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한국의학교육학회 서덕준 회장은 “예전에는 환자들이 의학박사라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기에 개원의들이 학위가 필요해 대학원에 들어와 등록금만 내고 편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해왔다”며 “이후 개원의들이 박사학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대학원 등록이 줄어들면서 교수들이 전공의들을 꾀어 의학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이같은 파행적인 대학원 운영을 통해 교수들은 논문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로 전공의들을 이용하고 있다”며 “현실이 이렇다보니 MD출신 가운데 Ph.D를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MD 중에서 전일제로 연구만 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는 현재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외부의 손을 빌려서라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주대 의학전문대학원 허윤정 교수는 “공식화된 자리에서 전문가들이 임상의학의 학위과정에 대한 문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도 “밀린 숙제는 미룰수록 새로운 숙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현실적으로 임상의학 학위과정에서는 풀타임으로 전공의를 하면서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라며 “이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에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져 온 것이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교수 임용에 있어 전일제 대학원 과정을 졸업한 사람에 한정해 채용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주의대 임기영 교수는 “전공의가 교수를 뒷바라지하거나 개원의들이 간판을 따기 위한 대학원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라며 “학위를 취득하고 싶다면 기초의학에서 전일제로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등록금만 주면 박사학위를 주는 시대는 끝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현재 11만명의 의사 가운데 1만4,000명이 의과대학 교수이며, 그 수는 대학병원이 부속병원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한다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 숫자 만큼 교수들이 제대로 학위를 취득했는지, 연구능력과 교육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한 병원에 있는 수백명의 전임교수가 과연 교육과 연구능력을 갖춘 교수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현재 임용돼 있는 교수들에 대한 재평가는 어렵겠지만, 앞으로 전임교수 임용 시 전일제로 대학원 과정을 제대로 마쳤는지를 확인하고 해당되는 사람만 채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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