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버드의대 Harvey V. Fineberg 교수


[청년의사 신문 양영구]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EBM)란 개념은 현대의학에서 이미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이는 국내 의학계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국내 보건의료정책 결정이 '근거'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 결정시 근거는 많은 이유와 핑계(?)들로 인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심심찮았다. 각 의학회에서 '근거'를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정책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제안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우리나라 의학계를 대표하는 대힌민국의학한림원이 보건의료정책 결정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실제로 의학한림원이 이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근거를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정책 결정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의학한림원이 미국의학한림원(IOM) 직전 회장이었던 Harvey V. Fineberg 하버드의대 교수를 초청해 근거 중심의 보건의료정책 관련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Harvey V. Fineberg를 만나 미국의학한림원의 역할과 그에 맞춰 우리나라 의학한림원이 나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Harvey V. Fineberg 교수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하버드대학 부총장을 역임하고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연속 두 번 미국의학한림원 회장으로 활동했다. 또 의료적 의사결정 학회 회장과 세계보건기구의 자문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미국의학한림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국의학한림원은 정책집행기관이 아닌 정책결정기관이다. 정책적 자문을 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학과 근거에 기반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건강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게끔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의학한림원 이외에 다른 분야의 자문기관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기관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의학한림원은 미국 의회의 인가를 받은 조직이면서 정부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기관이다. 다만, 미국 의회로부터 인가를 받았지만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재원조달을 받진 않는다. 또한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닌다는 점도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갈등과 편견에 있어 보다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학한림원은 보건의료정책 결정과정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용역처럼 정부의 모든 기관들이 보건의료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필요할 경우 우리에게 자문을 요청한다. 그러면 요청한 자문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고 자문을 요청한 기관은 우리가 작성한 리포트를 정책에 참고한다.

이외에도 작성한 리포트에서 파생된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한 워크숍이나 포럼 등도 개최한다. 이를 통해 취합된 견해들은 보건의료정책에 주요하게 반영된다.

-국내에서도 근거중심의 보건의료정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미흡한 수준이다. 조언을 하자면.

거창하고 큰 목표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현재 국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을 목표로 삼고 연구를 진행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새로운 보건의료정책에 반영되고 성과가 생겨난다면 국가 혹은 정부와 부처들과의 신뢰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학한림원 설립과 관련한 법적 근거가 미흡한 실정이다. 외국의 사례는 어떤가.

국가마다 다양하다. 미국만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의학한림원이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자리를 제대로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학한림원처럼 의회의 정책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국가는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여러 나라들 가운데 미국의학한림원처럼 체계가 잘 잡혀있는 나라는 네덜란드를 예로 들 수 있다. 네덜란드는 여러 카운슬링 위원회가 존재하고 네덜란드 의회는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설립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고 해서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대한민국 국회 등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놀랍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적 근거를 반영하겠다는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한국의 실정에 맞는 답을 빠른 시간 안에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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