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총장

[청년의사 신문 최주현] 끔찍한 한 해였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아까운 생명들이 스러졌고 남은 사람들의 상처는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날카로운 아픔만을 남기고 있다. 간밤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조간 신문을 조심스레 열어보는 마음은 시커멓게 멍들어 있다. 고통이 너무 큰 탓인지 우리 사회는 갈갈이 찢겨지고 있는 듯 하다. 도처에 위기를 알리는 빨간 경고등이 켜지고 광장에는 책임 소재를 가리는 성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희망을 전하는 활기찬 아침 기운은 간 곳이 없고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 백화점 참사의 기억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다. 딱 20년 전의 데자뷰다. 성수대교 붕괴 직전 일본에서는 1993년 7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이른바 전후 55년 체제로 불린 자민당 중심 정치 구조가 붕괴되고 일본 신당 호소카와 내각이 들어섰다. 94년은 ‘잃어 버린 10년’ 이라 일컬어진 경제 불황기 한가운데에서 일본의 정치 구조를 개혁하고 새로운 21세기 미래 사회 전략 마련에 고심하는 시기였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4년이 지났건만 더 나아진 것이 과연 있을까 싶다. 새천년과 함께 찾아온 경제 불황 또한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불황과 저성장,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불안정, 실업 등 혼란은 점차 커져만 간다. 안전 불감증과 사회적 감시 체계 미흡으로 정리된 20년 전의 위기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데다 새롭게 등장하는 세계적 단위의 문제들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해결책이 여전히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거듭되는 참사에 우리 각자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나. 20년의 시차를 두고 옆 나라 일본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을지 돌이켜보자. 앨빈 토플러는 정확히 20년 전인 1994년 일본 후지 티비와의 대담에서 일본의 불황 극복을 위한 구조 개혁을 위해 일본이 우선시하는 다음의 10가지 사항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1. 경제 개발은 다른 어떤 종류의 개발보다 중요하다. 2. 수출품이 내수용품보다 중요하다. 3. 국가가 기업보다 중요하다. 4. 회사가 개인보다 중요하다. 5.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중요하다. 6. 제품의 질이 삶의 질보다 중요하다. 7. 생산자가 소비자보다 중요하다. 8. 동질성이 이질성보다 중요하다. 9. 복종이 창조성보다 중요하다. 10. 남자가 여자보다 중요하다.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강조한 바대로 일본이 10가지 우선 사항(priority setting)을 일신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찾아올 정치 사회적 도전에 결코 맞서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흔히 일본을 따라 정치 사회 구조를 만들고 경제 부흥에 힘써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에 비해 십 수년 뒤떨어졌다고 자체 평가하는 우리네 현실에 대비해 보자. 20년전 토플러는 “오로지 물질적 부만을, 그것도 GNP 성장으로 측정되는 물질적 부만을 추구함으로써 환경적, 사회적 질서를 정체시킨다면 노동자와 봉급 생활자의 헌신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라 경고하며 표준화와 동일성에 바탕을 둔 대량 산업 사회에서 개인이 경시되는 풍조를 지적했다. 성장에 집착하여 헐값 수출에 나서면서 수출품과 내수품의 가격 차이가 커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부자 나라’를 만들어선 안된다고 했다. 국가가 일부 대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오히려 기업을 종속시키고 지역 기업들을 약화시킨다고 했다. 종신 고용이 사라진 시대에 “터무니 없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관료 체제의 저항을 무릅쓰고라도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규모의 경제가 줄어들고 규모의 비경제가 증대하는 시기에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경쟁을 통해 제품의 질을 높이는 것과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꼭 같지 않은 일이라 했다. 생산자 중심의 경제 성장이 아닌 주거, 환경, 문화, 교육 등을 아우르는 균형 감각을 갖추라 했다. 개인과 지역 공동체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복종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여성은 불황기에 가장 먼저 쫓겨나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예민한 정신력을 갖춘 인재로 대접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일본이 과연 이러한 충고를 적절히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해본다면 누구라도 회의가 들 지경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어떠한 모습인가를 반문해보곤 한다. 양상은 다르지만 혼란의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겠지만 안개 속에 갇혀있다면 한 발짝을 내딛는 것은 평상시보다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앞서 가는 사람보다 더 나아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속도보다 방향성이 대단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일 것이다. 우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근대의 혁신과 새로운 질서의 창시라는 과제는 그 누구에게도 힘든 숙제다. ‘빨리 빨리’가 아닌 ‘함께 다 같이’라는 연대의 정신이 없다면 비극 이후 각자도생의 아수라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