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청년의사 신문 박형욱]

변호사로 일할 때 만난 의뢰인 중에는 힘든 의뢰인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의뢰인 중에는 교사와 성직자가 많았다. 나만의 제한된 경험일 수도 있어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변호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공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만난 산재 관련 공무원은 힘든 민원인으로 어린이집 원장을 추가했다. 모두 남을 가르치는 직업이다. 결국 사람 나름이겠으나 가르치기만 하다보면 대화보다는 지시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게 될 우려도 높다.

의사도 어떤 면에서는 가르치는 직업이다. 환자는 의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에 대해 진단을 내리고 질병의 원인을 밝혀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치료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약을 제대로 복용하도록 지시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에 대해 교육한다. 이렇듯 계속 환자에게 지시를 하고 교육을 하다 보니 의사는 사회적 대화에 미숙해 지고 자기만 옳다는 생각에 빠지게 될 우려가 높다.

과거 의료계 단체에서 강의 의뢰를 받고 지방의 한 호텔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상당히 먼 곳이었는데 가 보니 보건복지부의 국장도 연자로 초청돼 있었다. 내 강의는 다음 순서여서 자리에 앉아 그 국장의 강의를 듣게 됐다. 청중의 대부분은 의대 교수들이었는데 곧 그 자리는 복지부 정책에 대한 성토장이 되어 버렸다. 그 국장은 의사들의 비난에 응대하면서 곤혹스러워 했다. 내가 왜 이 먼 곳까지 왔을까 하는 후회를 했을 것이다.

필자도 복지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복지부의 모든 정책을 그 국장이 만든 것도 아니다. 보직도 자주 바뀌기 때문에 국장도 그리 오래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에게 그 모든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도 없고 해명을 요구할 수도 없다. 정부의 고위 관료가 먼 곳까지 와서 강의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호의가 바탕이 된 것이다. 때와 장소를 고려하면 멀리까지 와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앞으로의 신뢰 관계 형성을 위한 단초로 삼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공직 생활을 할 때 건강보험 관련 과장을 역임한 공직자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모 학회와 관련된 보험정책에 문제가 있어 개선을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그 학회 대표들과 회합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표들이 너무 일방적으로 자기들 이야기만 계속하는 바람에 다시는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물론 그 학회의 지적은 옳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호의를 가진 공직자마저 반감을 갖게 만드는 대화의 기술이라면 그것은 좀 이상하다.

한 의사출신 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동료 기자들이 의사와 만나고 난 후에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 수업 듣다 왔네.” 아마도 그 의사는 기자에게 짧은 시간 의료정책의 모든 문제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일방적으로 격정적인 토로를 했을 것이다. 언론의 관심을 끌 ‘야마’를 고려하여 핵심을 짧고 인상 깊게 이야기하기보다 의료정책에 대한 온갖 불만을 길게 주저리주저리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의협 발전모색을 위한 연속토론 제3차 토론회: 의료계 고립과 위기 돌파를 위한 진단과 대응’ 이라는 주제다. 의료계의 고립은 의료계가 사회와의 의사소통에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 준다. 의료계가 의사소통에 미숙하다는 것은 결국 개개의 의사가 의사소통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말과 글로 하게 된다. 글이나 말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것을 고려하는 심성에서 비롯된다.

의사들은 자기들의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각자에게 중요한 일이 너무 많다. 공무원은 공무원 나름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각자가 중요한 일을 끌어 안고 사는 세상에서 의사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과 신뢰를 쌓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게 할 수 있을까? 거기에 성패가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의학적 지식과 의사소통 능력은 별개의 영역이며 별개의 주제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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