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박종훈 교수


[청년의사 신문 박종훈]

8월 22일자 뉴욕타임즈에 “Blood industry shrinks as transfusions decline”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상세하게 미국의 수혈관련 상황을 보고했는데, 내용인 즉 지난 5년간 미국에서는 약 40%의 수혈이 감소했고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향후 3~5년 안에 1만2,000명의 혈액관련 종사자들이 직장을 잃을 것이라는 것이다.

기사에서는 인류가 그동안 수혈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신뢰가 무너지고, 수혈의 적응증이라고 알려져 있던 잘못된 관행들을 정확하게 인지하면서부터 비롯된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한국은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한국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수혈량이 줄었다는 보고가 있은 적이 없다.

1981년 정부가 혈액의 수급 업무를 대한적십자사에 위임한 이후, 그간 혈액 사업은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하고 있다. 각종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혈액 정책은 양질의 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급하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수요를 줄이기 위한 정책은 없고 공급을 늘이려는 정책만 있는 것이다.

지난 5년간 무려 40%나 되는 수혈이 줄어들 정도로 미국인의 건강 상태가 갑자기 좋아졌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미국에서는 수혈량이 급격하고 줄었고 향후 더욱 급감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일까?

그것은 의료계와 정부가 공통의 목표를 갖고 매진하기 때문이다. 즉, 국민 건강에 이로운 지향점이 같은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의 관점에서 수술 후 감염은 절대적으로 주요한 관심사다. 이미 2008년에 CORR(clinical orthopedic related research)이라는 정형외과 전문 잡지에서 수혈이 수술 후 감염을 2.1배나 증가시킨다는 보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처럼 정부도 의료계도 수혈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다.

의료진들의 수혈에 대한 무관심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선진국은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정부 차원에서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꼼짝을 안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나 알까 궁금하다.

물론 수혈을 남용하는 의료진들의 문제도 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련 당국의 무관심과 정책 실패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알아서 의료진들이 잘하면 될 문제라면 정책 당국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모든 의료의 문제가 의료진들이 알아서 할 문제였다면 항생제 사용도 의료진들이 알아서 할 문제였을 텐데 항생제 남용을 줄이겠다고 기염을 토하면서 의료진들을 다그치던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항생제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던 당국의 모습이라면 수혈에 대한 당국의 현재의 모습은 남용을 방치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강조한 바 있지만 수혈 정책의 전향적인 변화가 없다면 분명 가까운 장래에 한국은 심각한 혈액 부족 국가가 될 것이다. 헌혈자인 젊은층은 줄고 사용자인 노인층이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펑펑 쓰고 싶어도 헌혈 자원이 고갈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수혈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혈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 일부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헌혈이 줄 것이라는 것이다. 수혈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것을 두고 헌혈이 줄 것이라고 우려를 한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것은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구조조정 당하게 돼 있다. 지금이라도 혈액 정책을 안정적이고 안전한 혈액을 공급하는 것으로부터 수혈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해야만 한다. 이것은 인구학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무엇보다도 환자를 위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수혈은 급작스럽게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좋은 치료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이미 인류는 수혈을 하지 않고도 치료하는 방법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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