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정부가 야심차게 주친 중인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의 일환으로 스텐트 시술과 양전자단층촬영(F-18 FDG-PET) 관련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개선됐다. 스텐트의 경우 현재 평생 3개까지만 건보급여가 되는 상황이지만 오는 12월 1일부터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 개수 제한 없이 급여가 적용된다.

양전자단층촬형의 경우 급여대상에 고형암과 형질세포종을 포함시켰으며, 이로 인해 비뇨기계 암(신장암, 전립선암, 방광암, 고환암 등), 자공내막암 등의 환자가 보험급여 혜택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국민들을 위해 복지부가 ‘통 크게’ 급여기준을 개선한 것으로 보이고, 지금까지 관련 급여기준으로 인해 스텐트나 양전자단층촬영에 부담을 느끼던 의료계도 환영할만한 개선안이다.

그런데, 지난달 11일 복지부가 이와 관련한 행정예고를 시작했을 때 주요 대학병원과 내과계, 흉부외과계가 들불처럼 일어나 개정안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급여기준을 풀어주는 대신 복지부가 몇몇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우선 스텐트와 관련해서는 개수 제한을 없앤 것이 가장 크지만, 그 이면에 중증의 관상동맥질환에 대해 순환기내과 전문의와 흉부외과 전문의가 협의해 치료방침을 결정하도록 했다.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관상동맥우회로술이 권장되는 환자의 경우 내과의사가 임의로 스텐트 시술을 하지 말고 ‘하는 것이 어떻겠냐’를 흉부외과 전문의에게 물어봐서 하라는 것이 복지부 뜻이다.

당연히 내과계가 반발했다. 지금까지 알아서 잘 하고 있던 것을 흉부외과 의사와 상의하라니, 마음에 들 리가 없다. 흉부외과도 반발했다. 협의할 것도 없이 내과의사들이 시행하는 중증의 관상동맥우회로술에 대해서는 스텐트 자체를 급여해서는 안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복지부가 중증 관상동맥질환자에 행해지는 스텐트 시술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아예 내과계의 스텐트 시술 자체를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론은 복지부가 원하는대로 개정됐다. 양 측의 의견이 너무 양 극단에 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복지부 설명이다. 결국 내과계도 흉부외과계도 주장했던 것 중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의료계는 밥그릇 싸움만 벌인 꼴이 됐다.

양전자단층촬영과 관련해서도 복지부는 CT와 MRI 촬영 후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촬영한 사례만 급여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양전자단층촬영을 2차 검사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이후 양전자단층촬영 청구와 관련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료계 간 갈등은 불 보듯 뻔해졌다.

의료계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물론 복지부가 큰 줄기에서 시행하고 있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의 파도를 의료계가 모두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막지 못하는 과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보장성 강화라는 대국민 명제를 들고 압박하는 복지부에, 힘을 합쳐 대응하기 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벌어질 손익을 따져 대응했다. 이런 식으로는 보장성 강화를 바라는 국민을 등에 업은 복지부를 이길 수 없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갑일 복지부가 국민이라는 무기까지 들고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상황을,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을일 가능성이 큰 의료계는 스스로 분열해 막으려고 했다.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더 암담한 것은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단결된 의료계 힘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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