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에자이 고홍병 대표

[청년의사 신문 이정수] ‘길 잃은 치매노인들을 집으로’, 최근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치매노인들의 보호를 위해 한 제약사가 발 벗고 나섰다. 한국에자이는 최근 한국치매가족협회와 ‘집으로 가는 길’ 캠페인 후원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캠페인은 치매노인의 배회로 인한 실종을 막기 위해 GPS 배회감지기를 보급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이 예정돼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9년 5,673명이었던 실종 치매환자가 지난해 7,983여명으로 5년간 40.7%가 증가하는 등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는 GPS 배회감지기를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여 복지용구 품목으로 도입한 바 있다. GPS 배회감지기는 경찰서에서 실종 노인의 위치를 쉽게 파악함으로써 빠른 시간 내에 치매환자를 구조하는 데 사용되는 장비인데, 이를 한국에자이가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많은 제약사들이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환자를 후원하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방이나 진단, 치료 등 의료적 상황을 넘어 사회적 문제해결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흔치 않다. 이에 한국에자이 고홍병 대표(사진)를 만나 이번 프로그램을 후원하게 된 배경 등에 대해 들어봤다. 고홍병 대표는 2001년 한국에자이 영업부에 입사한 이래 치매 치료제 ‘아리셉트’ PM(product manager), 마케팅 부장 등을 거쳐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에자이 아시아에서 CNS 마케팅이사 등을 역임했다. 올해 4월 한국에자이 대표로 취임했다.

Q. ‘집으로 가는 길’ 캠페인을 후원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국내에서 치매 유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치매 노인 실종 사례도 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실종된 치매환자들이 사망에 이르러 발견됐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부산 경찰청과 대한노인회, 부산지역 광역치매센터에서 GPS 배회감지기를 200여 가구에 보급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관계자들에게 배회 감지기가 널리 보급된다면 치매환자들의 실종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우리가 도울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치매가족협회와 협약을 맺고, 부산 지역 약 7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시범사업을 후원하게 됐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후원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 GPS 배회감지기는 최근 노인장기요양보험 복지용구 품목으로 지정을 받아 대여비의 85%를 국가가 보조하고, 환자나 그 가족은 15%만 부담하면 된다.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간병비 등을 감내해야 하는 치매환자 가족들에겐 그렇지만도 않다. 이에 환자들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본인 부담해야 하는 통신 가입비용과 월 사용료 등을 후원할 예정이다. 사실상 GPS 배회 감지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급은 부산지역의 치매광역센터가 담당하는데,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면 센터에서 GPS 배회감지기 사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권함으로써 보급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다.

Q. 에자이의 가장 유명한 약 중 하나가 치매치료제 ‘아리셉트’다. 때문에 치매 실종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 아무래도 치매 환자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많이 접하다보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치매는 단순히 약물치료와 조기 진단을 강조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둘러싼 치료 환경을 잘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작으나마 사회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게 이번 ‘집으로 가는 길’ 캠페인 후원이다. 현재는 부싯돌에 불과하지만, 보다 먼 길을 갈 수 있는 불을 밝히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일개 회사에서 이런 부분을 모두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회사의 여력이 되는 한 돕겠지만, 뜻을 같이 하는 다른 단체나 기관이 힘을 모은다면 지원사업이 더 탄력을 받지 않을까 싶다.

Q. 대표께선 ‘아리셉트’을 담당하기도 한 이력이 있어 치매 관련한 부분에 더 애착을 갖는 게 아닌가 싶다. 이후 5년여 간 아시아본부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사이 치매 관련한 국내 의료와 정책 환경이 달라진 것 같은가.

- 아리셉트를 담당했을 때는 치매 질환에 대한 인지도 개선이 주요한 화두였다. 때문에 우리 또한 전국적으로 치매를 알리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치매란 질환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사회적, 제도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상황인 것 같다.

다만,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진 것 같다.(웃음) 아리셉트만 해도 제네릭이 나왔고, 이밖에 경쟁제품들도 더 많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는 치매 분야의 리더로서 눈앞의 경쟁보다 치매 환자들의 치료와 삶의 질 개선에 보다 나은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Q. 말이 나온 김에 5년 전 제약시장과 현재를 비교해 본다면.

- 한국 제약 시장이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과거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마케팅이 활발해지면서, 각 회사의 의학부 능력 등이 중요해진 것 같다. 그야말로 (영업력 등보다) 제품으로 승부를 거는 환경들이 조성되고 있고,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Q. 아시아본부에서 10개국을 총괄했다고 들었다. 아시아 각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 한국 시장의 특징은 공적 보험 제도가 잘 갖춰져,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타 국가에 비해 높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인구가 많고 경제성장도 빨라 ‘기회’가 많은 시장이지만, 치료 보장성 측면에서 한국을 따라가는 국가는 드물다.

최근 국내 의료 전문가들이 해외 주요 행사에서 강연을 하는 사례가 늘고, 국내에 글로벌 임상시험에 한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한국 시장의 질적, 양적 성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생각한다. 향후에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시장이 가지는 강점은 세계적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고 제도적 뒷받침도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Q. 그 한국시장에서 에자이를 이끄는 수장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은.

- 개인적으로 ‘변혁’(innovation)보다 ‘개선’(improvement)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리더가 바뀌면 대개 무언가 새롭게 바꾸려고 시도를 하는데, 조직원들이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기 힘들다. 때문에 (단기간 내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기존의 제도를 존중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휴먼 헬스케어’(Human Health Care)라는 회사의 기업이념에 걸맞게, 한국에자이가 국내에서도 ‘환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로 각인되게끔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Q. 에자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치매’에 강점을 가진 회사로 유명한데, 이외에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지.

- 일단 최대 강점인 중추신경계(CNS) 분야는 신약 등으로 한층 더 강화할 계획이다. 이외에 다양한 제품 파이프라인을 갖춘 항암제 분야에서도 곧 좋은 제품들을 선뵐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자이 대표로서 에자이의 뛰어난 치료제들이 환자들에게 보다 빨리 소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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