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중증 화상환자 치료에 비상이 걸렸다. 피부이식에 쓰일 사체피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인공피부를 쓰고 있지만 가격도 비쌀뿐더러 치료경과도 좋지 않다. 심지어 패혈증과 같은 중증 합병증 발생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급한 대로 돼지피부와 같은 이종피부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사체피부에 비해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체피부의 91.5%는 미국산이다. 하지만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미국이 자국 내 대형 테러를 대비해 해외 반출을 줄이면서 국내에서 사체피부 고갈 사태를 겪게 됐다.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인체조직의 대부분이 수입인 것을 감안하면 이번 사체피부 수급난은 ‘예견된 사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미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이식학회는 장기나 인체조직의 국가별 자급자족을 권하고 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을 경우 불법 인체조직 채취나 불투명한 유통과정 등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수입을 위해 해외에 지출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작년 한해만 인체조직 수입에 수백억원이 지출됐다. 게다가 이번 사태처럼 응급 화상환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건강권 이슈로도 번질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방법으로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꼽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장기이식과 인체조직기증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인체조직기증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교문화에 익숙한 국민들이 시신을 훼손하기 꺼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보니 국내에서 이뤄지는 기증자는 100만명당 5명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이 133명, 스페인이 58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런 국내 환경에서 인체조직 기증을 활성화하려면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의료진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인체조직 기증을 권유하는 것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환자가 사망했을 때 담당하고 있는 주치의가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느냐’고 묻는 것은 인체조직이 필요한 다른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당장 내 일이 아니란 생각에 무심히 넘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아예 정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사망자 가족에게 인체조직 기증 여부를 묻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국민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는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망자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기증자를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체조직을 수입하는 한 이번 사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홍보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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