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주취자 응급센터' 6대 광역시로 확대…醫 “응급실이 주취자 보호소냐”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경찰이 만취자를 병원으로 보내는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 제도’를 서울에서 6대 광역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의료계는 주취자로 인해 애꿎은 응급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 측은 “주취자 응급센터가 취객을 보호하고 지구대 등 지역 경찰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며 6대 광역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내에서는 주취자를 병원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신현영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23일 본지와 통화에서 “경찰이 만취자들 중 알코올 중독자 등을 제대로 선별해서 병원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며 “의료인이 아닌 경찰이 체크리스트만으로 선별하기는 어렵다. 결국 주취자들을 병원 응급실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지난 2011년 10월부터 주취자 응급센터로 지정돼 경찰이 데리고 오는 만취자들을 보호해야 했던 서울 지역 응급실 내에서도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주취자 응급센터로 지정된 서울시보라매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의료원, 서울시동부병원, 적십자병원에서 보호를 받은 만취자가 최근까지 1만8,000여명에 달한다.

주취자 응급센터로 지정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주취자 때문에 일반 환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경찰이 주취자들을 너무 많이 데려와서 중증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없을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술에 취했을 뿐 겉으로 보기에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을 응급실로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며 “완전히 의식이 없거나 다친 주취자를 데려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고 말했다.

의학계에 자문해 주취자 응급센터로 보낼 대상자를 선별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는 경찰 측의 설명에 대해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순 주취자는 집으로 보내면 되는데 경찰이 이 제도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체크리스트가 있다고 하면 전혀 의식이 없거나 외상 흔적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응급실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술에 취한 사람들은 다 데리고 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부상을 입은 주취자들을 응급실로 보내려면 다른 환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저고 나왔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을 지낸 충남대병원 유인술 교수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부상을 입었다면 당연히 응급실로 와야 하지만 이때도 경찰이 응급실에 주취자를 보내 놓고 병원에서 알아서 하라고만 해서는 안된다”며 “경찰이 통제를 해줘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유 교수는 “주취자 응급센터로 지정된 병원들도 경찰이 주취자를 데리고 오기는 하지만 통제가 미흡해 힘들다고 한다”며 “경찰이 이 제도를 6대 광역시로 확대하겠다고 하면 병원 응급실 내 주취자들을 위한 별도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응급 환자들과 섞어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하지만 병원들 중에서 주취자들을 수용할만한 공간을 따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 의료진은 물론 병원 입장에서도 엄청난 부담”이라며 “또 경찰이 주취자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응급실이 난장판이 되면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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