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 "앵벌이 불과" 자조 vs 병원계 "한국의료 우수성 인정 쾌거" 환영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인 아부다비의 의사면허를 관리하는 아부다비보건청이 국내 의사면허를 인정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부다비보건청의 국내 의사면허 인정은 국가 차원에서 의사면허를 인정해준 첫 사례다.

UAE의 경우 우리나라와 다르게 의사면허를 관리하는 기관이 UAE보건부와 아부다비보건청, 두바이보건청으로 분리돼 있다. 이번에 우리와 면허인정과 관련한 ‘합의의사록’을 체결한 곳은 아부다비보건청이다.

때문에 일단 국내 면허는 아부다비에서만 인정되지만 오는 10월 UAE의 의사면허 관리가 통합될 예정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 의사면허는 UAE 전역에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면허인정 자격 기준 임상경험 8년에서 3년으로

아부다비보건청 면허관리규정(PQR)의 전문의 면허 기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사의 경우 Tier2 등급으로, 전문의 또는 동등의 자격보유자로서 WHO 등재 의료기관, JCI 등에서 인증받은 의료기관에서 ‘8년 이상’ 임상경험을 쌓아야만 면허가 인정된다.

현재 티어(Tier) 2등급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아랍국가, 체코, 덴마크, 이집트, 핀란드, 네덜란드, 홍콩, 헝가리, 인도, 이태리, 노르웨이, 싱가포르, 스페인, 요르단, 레바논 등 24개다.

이번 합의에 따라 티어1 등급이 되면 전문의 또는 동등의 자격보유자가 자격증 부여 국가에서 ‘3년 이상’, 또는 서구의 인증된 의료기관에서 2년 이상 임상 경험을 쌓으면 면허가 인정된다.

티어 1등급 국가는 현재 미국, 오스트리아,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 스웨덴, 영국 등이다.

티어 2등급에서 1등급이 된다는 의미는 면허를 인정받는데 필요한 임상경험이 8년에서 2~3년으로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변화지만 그 경험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 기준이 낮아지는 것도 적지 않은 이득이다.

티어 2등급의 경우 WHO에 등재된 의료기관이나 JCI, 캐나다 또는 호주 인증을 받은 의료기관에서 전문의로 근무한 8년만 인정한다. 반면 1등급의 경우 자격증을 부여한 국가에서 3년 이상 전문의로 근무하면 되며, 서구의 인증된 의료기관의 경우 2년이면 가능하다.

즉, 국내에서 전문의 취득 후에도 보통 2~3년 정도는 전임의 생활을 거치며 임상경험을 쌓는 것이 일반화됐음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국내 전문의 면허를 아부다비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면허 인정’ 첫 사례

이번 아부다비보건청의 한국의사면허 인정은 한 국가단위에서 한국의사면허를 인정해준 첫 사례다.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노력으로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사 8명에게 진료면허를 최종 승인한 사례가 있지만 이는 일부 성형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특별하게 승인한 것이지 한국의사 모두에게 문을 연 것은 아니다.

이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복지부도 이번 아부다비보건청과의 합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번 결정이 향후 중동으로 진출하려는 국내 의료기관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부 해외의료진출지원과 관계자는 “대부분 국가들은 외국인에 대해 시험을 거치지 않은 전면적인 면허 인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아부다비보건청과 합의를 통해 전문의 면허 기준이 티어 1등급으로 상향된 것이 첫 사례며, 이를 통해 환자송출 등에 이익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사가 해외진출의 핵심이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지만 전문의가 가려면 스텝도 같이 가야 한다. 이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의료인에는 간호사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문형표 장관도 지난 20일 직접 UAE로 날아가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한국 정부가 UAE의 이번 면허인정 결정을 큰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힘을 보탰다.

문 장관은 “의료선진국 간 해외진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중동의 관문인 UAE에서 한국의료의 세계화와 미래화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이번 합의를 평했다.

문 장관은 “한국 의료인에 대한 면허인정은 대내외적으로 한국의료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이는 향후 여타 중동국가로 확산되는 근거가 됐을 뿐 아니라 병원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면허문제 해결로 한국병원 진출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면허 인정 외 다양한 협력 추진

아부다비보건청과 맺은 이번 합의에는 면허 인정 외 다양한 인적 교류 내용이 담겼다. 그 중하나가 아부다비 보건의료 개선 및 의료서비스 평가를 위한 한국전문가와 자문관(방문교수)을 파견하는 것이다.

국내 의료진이 자문관으로 아부다비 공공병원에 단계적으로 파견돼 환자 진료 외 의료서비스 질 향상 등에 대한 자문을 수행하는 것이 골자다.

아부다비 내 4개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우선 5개 진료과별(골수이식, 암, 이식 등) 1~3명 규모(총 10~15명)로 파견해 시범 운영 한 후 점차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는 아부다비 측이 자국 내 의료서비스 질 향상 및 인프라 개선을 위해 먼저 요청한 사항”이라며 “우리나라를 보건의료분야 중점사업을 추진하는 협력파트너로서 공식 인정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UAE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국가 및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와 같이 한국의료 수출이 확대되는 전략 지역에 ‘메티칼 코리아 거점공관’을 지정해 해외에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 병원, 제약 및 의료기기 회사 등의 정보수집과 네트워크 구축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UAE에서 보여준 성공 사례를 사우디 등 중동국가로 확산해 제2의 중동 붐을 견인하고 보건의료산업이 양질의 일자리와 국부 창출이 가능한 미래 먹거리산업으로 육성, 발전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더욱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앵벌이 시작” vs "한국의료, 세계진출 교두보"

하지만 해외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와는 다르게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의사들의 해외진출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 이상 국내에서는 의사들이 버털 수 없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커뮤니티사이트 등에서는 이와 관련 국내에서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젊은 의사들의 해외 앵벌이가 시작됐다는 자조적인 평가까지 나왔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우리나라 의사면허가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우수한 의사들이 국내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생각해볼 문제”라며 “젊은 의사들의 해외 앵벌이가 시작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의 경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우리들병원 심찬식 원장은 “처음 진출했던 3년 전에 비해 현지에서 한국의료인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며 “의료기술이 다른 병원에 비해 우수하고 현지에서 열심히 한 점도 있지만 한국을 다녀온 환자들이 한국의료에 만족하고 의료 외 친근한 정서 등이 좋다는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라며 이번 면허 인정이 향후 UAE 진출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바스병원 박수열 원장은 “우리 병원은 면허 인정을 위한 인터뷰에만 6개월 이상을 소요했다”며 “두바이 재활병원 운영의 효율성과 여건 개선을 위해 정부 간 협력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협력을 확대해 달라”고 건의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한 전문의도 "한국의료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에 환영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료가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길 바라며, 팍팍한 한국의료 현실에서 젊은 의사들이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초기 진출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예상된다"면서 "우리 정부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외진출하는 의료진들의 고충을 헤아려 지원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 한국의료인의 면허가 처음으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이번 아부다비보건청과 복지부 간 협의는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는 다소 엇갈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해외 진출이 이번 면허 인정을 시발점으로 진정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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