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명근]

장기 의료지원이나 단기 의료 봉사팀이 활동하는 지역은 주로 저개발국가이거나 개발도상국가로, 독재정권과 전체주의 성향의 정치질서가 사회 전반에 걸쳐 일반화돼 있는 곳이 많다. 특히 극도의 후진국이거나 공산당의 위세가 강한 나라에서는 민주화가 성숙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위정자들과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특히 심해 일반 대중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많이 어렵다. 이러한 나라의 정치지도자일수록 자유로운 여론 조성을 봉쇄하고 일반 대중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통치 질서를 마련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후진적인 저개발 국가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공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관심을 두고, 해외의 자본이나 기업, 또는 외국인 봉사단체가 들어오면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외 자본 투자나 공장설립이라고 해도 자신의 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면 이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 된다. 심지어 순수한 봉사활동마저 먼저 자신의 이익이 충족돼야 허가를 내주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의료팀들은 가급적이면 이들 위정자들과 교류를 꺼리게 된다. 본연의 임무인 봉사활동의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사팀은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부패한 인사들보다는 해당 사회에서 가장 핍박 받고 소외된 이웃들과 먼저 접촉하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현지의 기존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료를 받지 못하는 소외된 빈곤계층이 봉사팀을 가장 먼저 찾는 사람들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료봉사단원들이 부정부패에 익숙한 주류 사회의 인사들을 멀리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의 효과적인 의료봉사를 위해서는 접촉을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의료봉사의 허가와 운영, 그리고 실질적인 의료 활동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현지 의료관련 관공서나 현지의 의사, 우리나라의 보건소와 같은 보건관련 단체들이다. 물론 이들은 앞서 말한 현지의 위정자나 고위 공직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부패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 상식으로 볼 때 건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원활한 봉사활동을 위해서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건전한 방식으로 이들 관련단체의 인사들과 좋은 친분관계를 맺을 수는 없을까. 이들 역시 사회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의료 전문인으로서 발전하고 싶은 마음과 의료 선진국인 한국과 같은 나라의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있다. 이들에 대해 개인이나 그들이 속한 기관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신경을 써준다면 그들도 마음을 열고 우리가 구상하는 일들에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가장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 중 한 가지가 바로 그들의 자녀에 관련된 일들을 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 자녀를 가진 부모이므로 의료 봉사팀들은 이러한 부모의 심리를 이해해 관련단체 인사들과 교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 관련 인사들과 만날 때 자녀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해준다면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건강이나 교육문제 등 자식을 양육할 때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활용 능력, 음악, 스포츠 등에 관한 레슨을 실시하면 이들은 분명히 의료 봉사팀들을 극진히 환대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의료 봉사팀의 의사와 간호사들 중에는 현지 아이들을 가르칠 충분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물론 본업인 의료 활동에도 바쁘겠지만 틈틈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러한 일은 치열한 의료봉사 활동 중에 누리는 취미나 휴식의 시간이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활동이 계속되면 마치 훌륭한 선생님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긴 학부모처럼 이들은 의료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또한 의료 봉사팀들이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본연의 봉사활동을 이끌어가는 데도 자신의 권한으로 줄 수 있는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의료팀으로부터 교육 받은 주류 사회 출신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들의 의료 활동과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확률이 높아진다.

내구성이 강한 건축물은 탄탄한 기반의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 의료 봉사팀은 본업인 의료 활동 뿐 아니라 활동하는 지역에서 든든한 기반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사회의 주요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굳건하게 세워야 가난하고 어려운 지역사회의 이웃들을 제대로, 그리고 오래도록 돌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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