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요양기관 대상 설명회 개최…醫 “중환자·폐렴 평가기준, 엉터리”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적정성평가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작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폐렴, 중환자실, 포괄수가제 등에 대해서도 평가를 추진하자 의료계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요양기관간 질적 편차가 클 수밖에 없는 의료현실을 무시한 기준이라는 등 평가지표에 대한 불만은 물론 평가시기가 다른 항목의 평가와 중복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심평원은 지난 16일 AT센터에서 ‘폐렴·중환자실·7개 질병군 포괄수가 평가’에 대한 요양기관 설명회를 개최했다.

500여명이 넘는 병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번 설명회에서는 신규 평가항목에 포함된 폐렴·중환자실 적정성 평가와 종합병원급으로 확대된 7개 질병군 포괄수가 평가에 대한 평가 시행계획이 공개됐다.

이날 심평원은 “중환자실은 요양기관간 질적 편차가 큰 데다 선진국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면서 “중환자실 병원감염 발생률이 매년 줄고 있지만 여전히 7.65건 수준으로 높아 지속적인 질 향상을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폐렴 평가에 대해서도 “외래부터 중환자실까지 긴 스팩트럼을 갖고 있는 데다 폐렴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초기 진단·치료의 적절성 등을 평가해 의료기관의 자발적인 질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평가 항목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는 “지난해 병의원에 대한 포괄수가제 평가를 실시한 이후 종합병원 이상에도 예비평가를 거쳐 확대 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면서 “수정체수술, 편도 및 아데노이드절제술, 충수절제술, 탈장수술, 항문수술, 자궁적출·기타 자궁 및 자궁부속기 수술·재왕절개분만 등 7개 질병군 수술을 하는 모든 병원이 평가 대상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양기관의 반응은 냉담했다. 평가를 위한 세부 지표와 조사표 입력방식의 문제점이 많아 이 상태로는 평가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입원일수 손으로 계산하냐…병원들 멘붕

조사표 작성시 행정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이를 테면 중환자실평가의 조사표 작성방법 중에서 호흡기 적용 시작시간 및 일수를 기재한다거나 입원후 중심도관 삽입 환자의 거치일수 등을 입력해야 한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의 진료 시간과 일수를 수기로 합산해 입력해야 하고 행정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입원 환자수가 많아서 조사표 작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전산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서 “일일이 계산하기 힘들뿐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고려가 아니라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병원 관계자는 “전담 전문의 회진시 평가대상기간 동안 누적 회진일수를 다 더해서 입력하는 것은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평가가 10월부터인 데다 항목도 3가지인데 우리에게 뿌려준 것(조사표)은 아무것도 없다. 미리 줘야 전산작업을 할 수 있는데 3월 경에 조사표를 준다는 것은 수작업으로 하라는 말이냐”고 따져물었다.

지표 1개 빼고 다 문제…조목조목 지적

평가 지표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임상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인 지표로 진료를 평가하려 한다며 결국 환자와 의료진간의 신뢰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조경욱 교수는 “지금 지표대로 폐렴 평가를 하는 것은 모험이다. 환자에게 적정하지도 않고 7가지 지표에 문제가 너무 많다. 직접 설명을 해주겠다”며 항목별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폐렴환자에게 중증도 판정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평가를 위해서는 모든 병원이 중증도 판정도구를 사용하라는 말이냐”면서 “실제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사용률이 30%정도이며 학회 지침에도 보조적 판단도구이지 모두 쓰라고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어 “지금까지 이런 도구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그럼 내가 잘못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것이냐”면서 “객담도말검사 처방도 모든 환자에게 하지 않는데 평가에 넣게 되면 쓸데 없이 간호사들이 처방을 이야기 할 것이고 환자들의 신뢰도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 이규덕 심사기획위원은 “폐렴은 지역병원은 물론 대학병원까지 많이 보고 있는데 실제 아무 준비 없이 아이가 기침하는 것만으로 폐렴 상병에 입원시키고, 심지어 그 아이의 형까지 함께 입원시키는 등 문제가 있어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 교수는 “그런 경우를 걸러내기 위해 모든 병원이 지표대로 진료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박했으며, 객석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조 교수는 항생제 투여 전 혈액배양검사와 금연교육 실시율, 폐렴구균 예방접종 확인률 등을 조목조목 짚으며 “모든 병원에 적용할 정도로 임상적 근거가 타당하냐”면서 “병원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료방법이 다른데 이를 똑같은 지표로 평가하면 안된다. 계속 하겠다면 충분한 논의와 동의가 이뤄진 다음에 해야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규덕 위원은 “이번 평가 지표는 호흡기학회에 연구용역을 통해 얻은 자료를 토대로 의학적 근거를 검토하고 전문가 논의 후 결정된 사항”이라며 “병원별로 차이가 많아 불편하다고 느끼거나 적정하지 않다고 보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점을 맞으라고 하는 평가지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醫 “평가 일정 조정,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냐”

평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실무진들의 불만도 쏟아졌다. 중환자실과 폐렴, DRG가 추가되면서 내년 4월이면 병원들이 총 6개 항목(대장암, 유방암, 위암 포함)의 조사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오늘 설명회에서 3개 항목을 설명했는데 모두 4월에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 병원에 담당자는 한정돼 있는데 어떻게 해줄 수 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인력문제는) 내부적으로 검토해 봐라”면서 “자료분산 시스템에 대해 내부 회의를 하고 있고 포괄수가도 추가 검토해 겹치는 것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그러자 병원 관계자는 “작년부터 4월에 몰린다고 지적했지만 조금씩 일정이 비껴갔을뿐 오버랩(중복) 됐었다”면서 “레이아웃이 늦게 나와 전산작업 할 시간도 주지않아 수작업을 할 때가 많았고 새벽 2시까지 나와서 일을 해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자료제출 기한이 지나면 (심평원에서) 날마다 전화가 온다. ‘언제 제출할거냐, 모두 제출했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 전화하면 다 못냈다고 하는데 우리만 안냈다고 자꾸 그런다. 일정을 제대로 검토해 달라”고 강조했다.

심평원이 행정편의를 위해 준비 중인 의료기록자동제출시스템이 오히려 병원 업무를 과중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의무기록 제출방법이 정확이 어떤 시스템이냐”면서 “스캔을 해서 자료를 제출하고 또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것이냐”고 질의하자, 심평원은 “우편으로 자료 제출을 할 경우 분실 문제가 있어 스캔한 파일을 웹에 전송하는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병원 관계자는 “그 많은 자료를 스캔해서 전송하는 것은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내는 것보다 더 문제가 있다”면서 “이런 점은 생각을 안하냐”고 질타했다.

이에 심평원 관계자는 “몇몇 요양기관에 논의했을 때도 그런 문제점이 있다고는 했지만 웹이 자료보관의 장점도 있고 사후 심사할 때도 이 자료를 공유할 수 있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이어졌고 이규덕 위원은 "스캔이 불가한 병원 등을 감안해 우편과 스캔 방식 둘다 수렴하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심평원 관계자는 "운영상에 문제가 있다면 의견을 더 수렴해서 최대한 (업무가) 과중하지 않도록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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