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청년의사 신문 이정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원들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둘러싸여 들으니 왠지 뭔가 털어놔야 할 듯싶다. 질문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기자인데 말이다.

‘혹시 나를 환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나?’ 별별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등을 타고 흐르는 땀이 더워서 흘리는 건지, 긴장해서 흘리는 건지 헷갈린다. 진중한 눈빛을 보이는 이른바 ‘뼛속까지’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엄마, 아빠 만들어주는 의국?

수분 후 인터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아찔한(?) 첫인상은 오진이었음이 판명됐다. 어느새 진중한 눈빛 대신 장난기와 웃음이 이들의 얼굴에 자리했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원은 4년차인 의국장 김해인, 김용구, 3년차 이다혜, 구자현, 2년차 김다슬, 이현아, 1년차 이준용, 남윤주 선생 등이다. 언뜻, 이름만 보면 여자가 많을 것 같지만 남녀 비율은 일대일, 그것도 각 연차마다 남녀가 한 쌍씩 짝지어져 있는 구조로 흡사 ‘남녀공학’에 온 듯한 분위기다. 의국의 화기애애함이 흔치 않은 황금비율(?) 때문인가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 어느새 기자의 생각을 읽은(?) 의국장 김해인 선생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정신과여서 그런지, 서로 잘 이해해주는 분위기에요. 성격은 정신과 의사로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환자를 보는 상담스킬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서로 고쳐야 할 점과 장점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편이예요. 다른 데서는 할 수 없는 얘기까지 온갖 얘기를 서로 나누기 때문에 서로가 더욱 깊은 관계인 것 같아요. 남편이 내과인데, 제가 보기엔 정신과보다 끈끈한 것 같지는 않네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서부터 자신의 얘기까지 허물없이 의국에서 풀어낸다며 의국원 서로가 가족이자 친구란다. 또 환자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일을 하다 보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서로 덜어주기도 한다고.

그러자 2년차 김다슬 선생이 의국의 오래된 전통을 소개하며 바통을 이었다.

“1년차가 들어오면 2년차를 엄마, 아빠로 짝을 지어줘요. 100일 동안 1년차가 술기나 환자 면담을 엄마와 아빠로서 챙기고, 봐주는 거죠. 그러면 100일 후에 1년차가 엄마와 아빠가 돼줬던 2년차 선배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사와요. 오고가는 정이랄까요.”

정신과라 그런지 정신적 유대감을 강조하며, 이는 비단 안암병원만의 분위기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고대 정신건강의학과는 6개월마다 안암, 구로, 안산 세 곳으로 순환근무를 하게끔 돼 있어, 고대의료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원들은 서로가 모두 친하다고. MT라도 갈라치면 세 병원의 모든 의국원들이 가족처럼 한데 모인단다. 순환근무를 하다보면 짐을 옮겨야하는 수고부터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어려움까지 있겠건만, 이들은 하나 같이 “좋은데요”라고 말한다.

“다른 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지역 병원만이 가지고 있는 환자군이 있어요. 여러 지역을 순환근무하면 환자 경험이 넓어지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거죠. 의사로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해인 선생이 의아한 표정의 기자에게 웃으며 설명했다.

“정신과 의사도 사람이니까요”

‘이들의 회식 분위기는 어떨까’라는 궁금함에 질문을 던지자, 일단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온다.

“정신건강의학과가 (다른 과보다) 신체적인 스트레스가 적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적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특히 환자를 더 잘 이해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보니, 힘든 일도 많죠. 다른 과 친구가 제가 하는 것을 보면서 ‘정신과는 못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구자현 선생이 담담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동기 이다혜 선생도 한마디 거든다.

“가끔 조울증 환자가 조증상태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증상으로 보려고 하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가끔은 불쾌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처음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점차 이를 증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지금은 많이 극복했죠. 정신건강의학과를 그만두고 싶었냐고요? 그렇진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고 묻자. 2년차 이현아 선생은 “다른 과에 비해서는 술을 많이 먹는 편인 것 같아요”라고 털어놨다. 그러자 역시 동기인 김다슬 선생이 순화(?)시켜 설명해준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일종의 감정노동자예요. 치료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환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감정적 소비와 노력을 많이 하게 되요. 그래도 환자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스스로의 능력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이럴 때 아주 가~끔 술을 많이 마시죠.”

힘든 만큼 얻는다는 진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는 직업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김해인 선생은 “설명할 때야 당연히 말을 많이 하지만 70~80%는 듣는 게 일이에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말하는 것보단 듣는 게 더 익숙한 것 같아요. 인내심도 훨씬 더 늘어난 것 같고, 화가 나는 상황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라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김해인 선생의 얘기에 동료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3년차 구자현 선생은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주인공으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대한 얘기로 기자의 이해를 도왔다.

“‘괜사’에서 환자를 보면서 갑자기 의사로서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화를 내는 상황이 있더라고요. 트라우마로 인해 올바로 대처하지 못한 건데, 그 상황이 왠지 우리를 보는 것 같았어요. 과거의 일들 때문에 잘못 대처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가끔 저도 모르게 싫어하는 환자가 있게 되는데,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해서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난 후, 김다슬 선생이 선배로부터 들었다며 기자에게 해 준 말이 머리에 맴돈다.

“‘정신과 환자는 어느 시기가 되면 좋아진다’는 말이 있어요. 자칫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자만하지도 포기하지도 말라는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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