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기자의 감별진단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우리나라는 위암 발생이 여전히 세계 1위 수준이다.


대장암 발생 증가 속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소화기 상부는 동양의 암이, 하부는 서양의 암이 상존한다. 점심에는 햄버거를 먹고, 저녁에는 굴비를 먹는 우리의 일상과 연관된다. 동서양 공존이 우리 사회이자 우리 몸이다. 그 결과, 조기 위암과 대장 용종을 내시경으로 제거하는 의료 기술이 세계 최고가 됐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은 우리를 의자에 묶어 놨다. 앉아 있을 때 허리 부담이 3~4배 늘어나니, 척추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러니 척추 디스크가 급증하고, 이들이 고령으로 진입하면서 척추 퇴행성 질환도 늘었다. 빌 게이츠가 척추 전문 병원 번성 시대를 연 셈이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목을 내밀고 고개를 처박는 자세가 많아졌다. 이어 목 디스크가 급속히 늘었다. 스티브 잡스가 신경외과 의사의 잡(Job)을 늘린 격이다.

에어백이 등장하고, ABS가 장착되면서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두개골 골절을 보기 어렵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범칙금을 매기고, 오토바이족의 헬멧 착용을 단속하면서, 신경외과 의사의 손은 두개골을 놓게 됐다.

1970~1980년대 버스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관대한 흡연 문화가 현재의 폐암 사망률 1위를 낳았다. 1~2인 가구의 등장과 외식 인구의 급증은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를 늘렸다. 짭짤해야 손님을 끌고, 단골을 유지한다. 소금은 짜나, 값은 싸다. 음식점은 소금을 아낄 이유가 없고, 식품회사는 염분을 줄일 이유가 없다. 그 부속물이 30대, 40대 조기 고혈압이요 만성 신장 질환의 증가다. IMF 경제 위기는 불안 장애를 증가시켰고, 준비 안 된 고령화는 노년기 우울증을 늘렸다.

압축 성장의 빈틈을 질병이 메우는 구조다. 경제 양극화의 간극을 질환이 채우는 형태다. 환자로 태어나 환자로 죽는 기능주의 현대 의료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환자 아님’으로, 무병 상태로 살기란 거의 불가능해진 느낌이다.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만든다. 아플 짓을 했기에, 아프게 해놨기에 질병이 생기고 환자가 된다. 사회 변화와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몸에 질병이라는 상처와 흔적을 반드시 남긴다. 그에 따라 의료 서비스도 진화한다.

이처럼 사회와 질병의 역학은 갈수록 맞물리는데, 한국 의료서비스는 지금까지 질병 치료에 몰입했다.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 체제가 시작된 이후 그다지 변한 것은 없다. 25년이 지났지만 질병이 일어나는 과정은 외면했고 여기에 병원은 무관심했다. 그래도 먹고 살기 충분했고, 성장하기 바빴다. 나름 빛나는 의료 기술의 발전 성과도 컸다. 하지만 공급의 포화로 점점 성장의 끝이 보인다.

한국 의료는 반쪽 짜리다. 환자가 아파야 살고, 건강하면 죽는다. 환자가 병원을 떠나는 순간, 의료서비스는 단절된다. 건강한 환자는 관심 밖이다. 환자의 생활과 의료서비스에 교집합이 없었다.

이제 한국 의료는 환자의 병이 아니라 환자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새 체제를 짜야 한다. 삶과 분리된 의료를 삶으로 돌려야 한다. 과학과 의학으로 무장하고, 건강관리, 질병 교육, 영양, 운동, 검진, 질병 관리, 질병 예측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집과 병원 사이의 제3 지대 공간을 의료가 채워야 한다. 환자가 병 걸려서 병원 오기만 기다리는 현 체제로는 한국 의료의 발전은 없다. 질병 치료가 목적인 의료가 아니라 건강한 삶이 목적인 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한국인을 진정 건강하게 하는 길이다. 의료인들은 질병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로 새 체제를 만들어 가야 한국 의료의 미래가 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