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박종훈]

며칠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근원지라고 알려진 라이베리아인 두 명이 부산으로 입국했는데 그 들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면서 검역 당국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요지의 방송이었다. 진행자는 작심한 듯 라이베리아 인의 입국을 허용한 이유와 왜 그들의 소재파악에 실패한 것인가를 질타하는 것으로 질병관리본부의 담당 과장과 전화 인터뷰를 시작했다. 담당 과장은 입국 당시에 에볼라 바이러스의 감염 징후나 우려할만한 행적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니 진행자는 잠복기일수도 있는데 검역당국의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갔다. 여기까지 들으면서 나 또한 ‘검역의 문제가 있었구만, 공무원들 참 문제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게 상식적인 생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해당 과장의 답변을 잘 생각해보면, 진행자와 순간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한 특별한 징후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의심할만한 행적이 없는 사람을 단순히 특정 국가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하거나 본인의 동의 없이 감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을뿐 아니라 WHO에서도 권고하지 않는다. 즉,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사안이며 자칫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그렇게 하는 나라는 없다. 진행자는 다시 일전에 모 대학이 국제행사를 하면서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학생들의 초청을 취소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니, 당시에도 당국은 입국을 불허할 이유가 없음을 알렸으나 대학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질병관리본부 과장을 말했다.

그 행사와 관련해 당시 국제 사회의 거센 항의가 있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무지한 나라가 된 것이다.

라디오 진행자도 결국 머쓱해지고 말았다. 듣고 있던 나 또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잠시 흥분했던 것이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는 이런 식의 일들이 부지기수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일이다. 사람들이 방사능 비 운운하면서 염려하던 때 전문가들은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했건만 몇몇 초등학교가 휴교를 했다. 휴교를 했으면 일본의 학교들이 휴교를 했어야 했을 텐데도 그랬다. 이후 일본의 사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더 이상 방사선 비 운운하면서 휴교를 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해프닝이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국민의 상당수가 광우병에 걸려서 쓰러질 것처럼 난리가 났었으나 현재 미국산 쇠고기가 광범위하게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짐은 없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 이 또한 생방송 라디오 중에 있던 일이다. 컨테이너트럭의 운행을 유심히 관찰한 시민 한 사람이 방송국에 제보를 했다. 앞과 뒤의 번호판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단속을 피하려는 꼼수인 것 같다고 했다. 당국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라디오 진행자는 흥분했고 당장 경찰청을 연결해서 진상을 묻겠다느니 난리를 떨었다. 그 때 컨테이너 트럭 운전자 한 사람이 전화를 했다. 컨테이너는 끌고 가는 차와 컨테이너화물 부분이 서로 다른 차량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번호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마치 그럴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주장을 했는데 전문가가 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로 들릴 수가 있다. 의료계가 거품 물면서 주장하는 이슈들 가운데 종종 이런 식의 것들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포괄수가제를 놓고 의료계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을 했었다. 이는 행위별수가제가 아닌 금액을 미리 정해놓고 치료를 하면 의사들이 이익을 남기기 위해 질 낮은 자재를 쓸 것이라는 상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의사들 스스로를 폄하하는, 그러면서도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발생하지 않은,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주장이었다. 현재 포괄수가제로 치료하고 있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의료의 질이 낮아졌다는 보고는 없다. 이제 의료계가 주장하듯 의료의 질과는 무관하니 광범위하게 시행하자고 정부가 주장하면 무엇이라고 대응할지 궁금하다.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개원의의 절반 이상이 도태될 것이라는 주장도 혹시 그런 식의 주장은 아닐까 싶다. 오진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지만 그 외의 주장들은 애매하다. 약이 택배로 배달되지 못하는 식의 절름발이식 원격의료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사안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서 문제가 없을 대안을 제시하고 다른 많은 것들을 얻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대안은 무언인지를 제시해야 하는데 객관적이지 않은 사실(?)에 기반해서 반대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영리병원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의료가 붕괴되더라는 보고가 없는데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지 좀 더 명확하고 객관적 주장이 필요하다. 비영리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허용문제가 단어도 이상한 의료민영화 시행이라는 주장과는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설명이 애매하다. 새 집행부가 들어선 지 수개월. 산적한 의료현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는 갈 길을 가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대규모 투쟁만이 해답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강세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라디오 진행자가 당황해서 더 이상 질문을 못했듯 정부 당국자도 꼼짝 못하는 그런 주장이 돼야 한다. 막연히 그럴 것 같다는 주장만으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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