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광모의 가까운 미래

[청년의사 신문 양광모] 최근 미국 뉴욕주는 장애인 표시판 디자인을 역동적인 모습으로 교체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기존 표지판은 휠체어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세계 공용이 된 이 디자인은 1968년 덴마크인 수잔 코에프가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반면 뉴욕주가 새로 채택한 장애인 표식은 미국의 새라 핸드런이 만든 것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려 전진하는, 마치 경주(?)를 하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뉴욕주는 새 표지판과 더불어 장애인 전용을 뜻하는 단어도 ‘handicapped’ 대신 ‘accessible’을 쓰도록 했다. ‘handicapped’란 단어가 장애인들이 손에 모자를 들고 구걸하는 모습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장애인 단체들의 요구에 응한 것이다. ‘accessible’은 장애인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에 참여한 의족 스피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생각났다. 그는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었는데, 의족을 착용하고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정식 올림픽에 참가해 유명해졌다. (물론 지금은 ‘애인 살해’ 혐의로 더 유명해졌지만) 당시 함께 참가한 육상선수들 사이에서 ‘의족 덕분에 기록이 잘 나온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400미터 결승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중도 탈락을 했기에 망정이지 우승까지 했다면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오만한 편견일 수 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나 영화 ‘로보캅’의 주인공도 장애인이지만(600만불의 사나이는 우주선 추락, 로보캅은 총격과 폭발로 사지를 절단한 장애인) 아무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멋있다고 열광하지 않았던가.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그런 것 아니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영국에서는 600만불의 사나이를 본 딴 ‘바이오닉 맨’이란 프로젝트를 이미 몇 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베르톨트 마이어(Bertolt Meyer) 교수의 왼손에는 사람의 손과 똑같이 움직이는 ‘의수’가 착용돼 있다. 마이어 교수는 선천적으로 왼쪽 팔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개발된 의수(바이오닉 핸드) 덕에 타자도 가능하고 악수도 할 수 있게 됐다.

또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도 이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MIT의 휴 헤어(Hugh Herr) 교수는 산악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는데 전자 감응방식의 인공의족 덕분에 산을 다시 오르고 암벽 등반도 가능케 됐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 이 연구소는, 테러 당시 왼쪽 다리를 잃은 댄서에게 인공의족을 달아줘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만약 마이어 교수의 ‘팔’이 보통 인간의 팔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 헤어 교수의 ‘발’이 보통 인간의 발의 수십 배 마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야간에도 볼 수 있고 보통 인간의 시력보다 수백 배 되는 시력을 인공 안구로 갖게 된다면?

인체에 부착된 부위가 그런 부담을 견뎌주기만 하면 지금 당장에도 현실화 될 수 있다. 어쩌면 특수 능력이 중요한 군인이나 비행기 조종사들은 의도적(?)으로 이런 대치 수술을 받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첫째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이와 같은 선진기술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이 말은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에 있어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둘째는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윤리적인 부분이다. 팔, 다리뿐 아니라 심장이나 내장 일부 및 피부까지 인공으로 만들어 부착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남아있을 때 인간으로 봐야하는 것일까. 이런 논란들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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