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심평통신

[청년의사 신문 양기화] 미국 콜로라도 주에는 놀라운 자연경관을 가진 국립공원들이 산재해있다. 오밀조밀하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 브라이스 국립공원이 여성적이라고 하면, 자이언 국립공원은 묵직하고 선이 굵어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브라이스 국립공원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의외로 자이언 국립공원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다. 깊은 계곡을 따라 걷는 ‘The narrows’라는 이름의 오솔길 때문일 것이다. 앞이 막혀 더 이상 길이 없을 듯 보이는 절벽의 끝에서 홀연 길이 나타나기를 거듭하는 것이 이 길의 매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추진하고 있는 2014 허혈성 심질환 통합평가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지난 5월 자료제출 시한을 열흘 연장하여 마감하였는데도 전체 평가대상기관의 76.1%만이 자료를 제출했다. 이번 사태는 심평원이 평가업무를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심장학회(아하 심장학회)가 개별 병원에 공문을 보내고, 나아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회원들을 통하여 압력을 행사한 결과다. 심장학회는 공문을 통해 평가에서 산출된 데이터의 신뢰성과 평가방법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고, 조사표작성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조사표 입력 등 공동사업이 불가하다고 했다.

최근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발병 당시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되어 심폐소생술을 받아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최종적으로 중재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처럼 급성심근경색증 환자가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심평원의 ‘적정성평가’가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심평원의 심혈관질환 적정성평가에 협조해온 심장학회를 비롯한 일선 병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액의 흐름에 이상이 생기는 허혈성심질환의 범주에는 몇 가지 질환들이 있다. 가장 중증 질환으로는 급성심근경색증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비교적 경증의 협심증이 위치한다. 이 둘 사이에는 연속된 스펙트럼으로 질환들이 존재하고 있다. 치료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관상동맥우회술을 받거나 흔히 ‘스텐트를 넣는다’라고 말하는 PCI(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시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약물로 증상을 호전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허혈성 심질환은 질환의 스펙트럼이 넓고 처치도 다양해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되어 왔다.

심평원은 2012년부터 허혈성심장질환을 통합하여 평가하는 방안을 두고 심장학회가 추천한 전문가들과 협의를 계속해왔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13년 7월 진료부터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를 시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평가시행을 불과 2개월 앞둔 지난 해 심장학회의 임원들이 교체되면서 허혈성심장질환의 통합평가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실상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를 중단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일부 병원들이 심장학회의 의견대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바람에 시범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평가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 때문에 이미 결정된 시범평가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심평원의 입장이다.

심평원은 심장학회 임원들과 간담회 등을 통해 이견을 좁히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심장학회가 심평원의 평가사업에 대하여 상당히 오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그런 오해를 딛고 논의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함에도 접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최근에 가진 간담회에서는 반 발짝 정도 다가서는 듯하다. 꾸준한 만남을 통해 상호간의 신뢰를 쌓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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