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차병원 비뇨기과


▲ 왼쪽부터 1년차 이태호, 3년차 강문형, 2년차 최창일, 2년차 유영동, 1년차 정재호

[청년의사 신문 김선홍]

분당차병원 비뇨기과 외래 진료실 앞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입이 떡 벌어졌다. 비뇨기과 진료실 앞에 환자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인터뷰 일정을 잡는 데도 몇 번의 조정을 거친 터라 바쁜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환자들이 많을 줄이야.

‘이래서야 인터뷰할 시간이나 있을까’하는 생각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금요일이 제일 바쁘다고 하는데 왜 하필 오늘 이 시각에 인터뷰를 하자고 했는지 한숨부터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분당차병원 비뇨기과 의국원 5명 중 길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전공의는 2명뿐이었다. 이들도 수시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의 명단이 뜨는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꽤나 정신없는 의국. 하지만 초조한 건 기자뿐인 것 같다. 급히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이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여유롭다. 항상 이래 왔다는 듯이.

“지칠대로 지친 전공의들이여 오라”

이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분당차병원 비뇨기과 의국의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전공의들이 모여 있기에 웬만한 일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고.

분당차병원 비뇨기과에는 다른 수련병원 비뇨기과 의국을 거쳐 온 전공의들이 많다. 20대인 전공의는 없고 주로 30·40대가 주를 이뤄 다른 의국에 비해 평균 연령대가 높다. 정재호 선생도 그 중 한명이다. 전공의 1년차지만 의국 내에서 가장 연장자다. 바로 위인 2년차 최창일 선생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약간 꼬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둘은 “전혀 꼬이지 않았다”며 웃었다.

정 선생은 소위 ‘더 크고 빡센’ 수련병원 의국에 몸담았다가 힘든 수련 환경에 혀를 내두르고 나와 분당차병원에 둥지를 틀게 됐다고 한다. “수련환경 안 좋은 데가 참 많잖아요.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웃음). 전에 다녔던 병원도 그 중 하나였어요. 아랫년차한테 일을 몰아주거나, 윗년차들이 아랫년차한테 막말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그런데 여긴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강압적인 회식도 없고 민주적인 분위기죠. 이 자리엔 없지만 의국장인 3년차 강문형 선생, 사람 참 좋아요. ‘양반’이에요. 하하.”

최 선생도 의국 자랑에 한술을 더 보탰다. “얼마 전에 청년의사신문을 보니 어떤 교수님이 ‘의국문화가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쓴 글을 봤어요.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에요. 평화롭죠.(웃음)”

의국의 평화를 수호하는 양대 산맥

정 선생이 ‘사람 참 좋다’고 칭찬한 의국장 강문형 선생은 급한 수술 일정이 잡혀 이날 인터뷰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가장 바쁜 금요일에 인터뷰 일정을 잡은 당사자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일정이 잡혀 만나지도 못했다. 강 선생에 대해 의국원들은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작은 목소리에 수줍음을 타는 ‘샤이 가이(Shy guy)’지만, 책임감과 배려심도 많아 현재와 같은 ‘평화 모드’ 의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단다.

하지만 이 의국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터뷰 내내 의국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 ‘과장님’.

정 선생은 인터뷰 내내 “과장님이 좋아서 그렇다”, “과장님이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심지어 의국 생활의 가장 뿌듯한 날도 (약간의 우스갯소리를 섞어) “과장님께 칭찬을 받은 날”이란다.

“수련과정이다 보니까 아직도 가끔 실수를 하죠. 그래도 과장님은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남들이 안보는 데서 다시 가르쳐주세요. 반면 ‘칭찬은 남들이 보는 데서’ 크게 하시고요.” 정 선생의 말에 최창일 선생도 “그렇다. 보면 알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들이 그렇게나 추앙하는 과장님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과장님을 찾아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당차병원 비뇨기과장인 박동수 교수. 전립선센터장인 그는 로봇수술, 전립선암브라키수술의 권위자기도 하다.

칭찬으로 전공의들을 춤추게 하는 박 교수지만 그도 예전에는 칭찬에 인색한 교수였다고 한다.

“예전엔 화가 나면 수술실에서도 막 화를 내고, 심지어 한 대씩 쥐어박기도 했었어요.(웃음) 애들한테 숨 쉴 틈을 안줬어요. 지독하게 말이죠. 그런데 딱 6~7년 전쯤부터는 옛날식으로 하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 교수는 분당차병원 비뇨기과에 4년차 전공의가 없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지금 의국에 4년차가 비어요. 5년 전에 전공의가 너무 힘이 든다고 그만둔거죠. 그맘때가 한창 비뇨기과가 힘들다며, 전공의들이 들락날락하던 때였거든요. 떠났다가도 종종 돌아오는 친구도 많았는데, 진짜 다 그만둘 줄은 몰랐죠. 그 이후로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지금은 아무리 화가 날 상황이라도 화를 안내요. 무엇보다 전처럼 ‘네가 보면서 배우라’는 식이 아니라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예전처럼 노동자 개념으로 전공의들을 부리다간 큰 일 납니다.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웃음)”

“정신은 좀 없어도, 평화롭습니다”

그런 박 교수의 노력 덕분일까. 분당차병원 비뇨기과는 기피과라는 말이 무색하게 3년 연속으로 정원을 채웠다. 2년차 최 선생이 분당차병원 비뇨기과에 온 것도 그런 ‘소문’을 듣고 온 것이라고. 최 선생은 다른 병원에 있던 한 지인으로부터 “스트레스 수준이 낮고, 평화로우면서, 소위 말해 비뇨기과 환자의 처음과 끝을 다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며 분당차병원 비뇨기과를 추천받았는데, 와서 보니 실제로 그랬다고 했다.

“2차 병원이라 1차 환자도 보고 3차 환자도 볼 수가 있어요. 로봇 수술까지 경험할 수 있고요. 아무리 평화롭고 편한 병원이라고 해도 환자가 없으면 수련이 안되잖아요. 덤으로 이곳에서는 일을 즐겁게 할 수도 있고요.”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2년차 유영동 선생이 합류했다. 유 선생도 최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 교수님이 학교 때 스승님이시기도 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어쨌든 전망을 떠나서 어쩌면 다들 안 좋다고 할 때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사가 된 이유인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어차피 같잖아요. 수술하는 과를 원하는데, 어디를 지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저희병원에 지원하세요. 낮에는 정신이 없지만 밤에는 왠지 뿌듯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평화롭다’는 점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의국, 분당차병원 비뇨기과.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의국원들의 얼굴에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자랑스러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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