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 설명회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행사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취해진 조치였다. 애초에 이는 의협이 정부에 요구해 만들어진 자리로, 정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갑작스런 통보를 받은 정부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당황하면서도 불쾌한 모습이다.

의협이 행사를 취소한 이유는 회원들의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회원들 중 상당수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반대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을 깨는 것이 옳은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 과거와 달리 정부가 ‘원격모니터링’ 수준의 시범사업만 하자고 양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모니터링은 현재 의료법을 수정하지 않더라도 시행 가능하다. 이미 수많은 웨어러블 장비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를 의료기관인 병·의원에서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데이터도 믿을 수 없을 뿐더러 관련 수가도 전혀 책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제안에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의협이 개최했던 의학 엑스포 2014에 초청된 군터 아이젠바흐(Gunther Eysenbach)교수는 “이미 의료 선진국에서는 모바일 장비를 활용해 혈당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을 넘어, 앱으로 처방을 조절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생체 정보를 측정하는지에 따라 효율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모니터링이 환자들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 시킬 뿐만 아니라 의료비 지출도 절감하게 된다는 근거를 축적해 가고 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근거를 생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또 인적 자원도 풍부해 창의적인 서비스를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적극 지원할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대면진료를 대신하는 원격진료’를 두려워해 원격모니터링까지 거부하는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허용되는 원격진료의 범위 축소를 제안하고 원격모니터링과 원격진료를 확실히 분리하는 방안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의사들은 ‘원격’이란 단어 자체에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의협이 리더십을 발휘해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단순히 수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의사들이 적극성을 보이며 ‘원격의료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돼야만 시범사업 수준을 벗어나 본 사업으로 접어들었을 때에 의료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

추무진 회장은 의정합의를 이행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원격의료 외에도 해결해야 할 현안들은 아주 많다. 지금이야말로 의협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