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7월 1일부터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했거나 건강보험료를 6회 이상 체납한 환자의 명단을 요양기관에 제공하고 환자의 자격여부를 병·의원이 직접 확인하도록 했다. 지금처럼 공단이 청구를 받은 뒤 자격을 검토하게 된다면 의료기관에 일단 청구액을 줘야할 뿐 아니라 앞으로 그 사람이 또다시 진료를 받더라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으니, 이를 차단하기 위해 사후관리 대신 사전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1차 사업에서는 고소득 연체자들 1,800명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향후 급여제한자 100만명까지 점차적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사전관리로 전환함으로써 6,7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병·의원에서는 환자들의 신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탁상 행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행정업무 증가와 환자의 불편 증대 및 신뢰관계 악화 때문이다. 게다가 타인의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가지고 오는 부정수급자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사진이 부착되어 있지 않은 건강보험증을 보고 의료기관이 도대체 무슨 수로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의료기관의 행정업무를 줄이겠다며 병원전산시스템에 공단 자격정보를 공유하도록 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비용은 병원들이 자비로 부담하게 했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라는 이득은 공단이 누리는데, 비용은 의료기관이 내는 형국이다. 과거 의약품 안심서비스(DUR)를 정착시키려 할 때와 비슷하다.

이런 갈등은 계속 반복된다. 정부가 리더십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리더십은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재배열하는 데서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이익과 의료기관의 이익, 그리고 환자의 이익을 정교하게 조정할 때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는 말이다.

건보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막연한 말만으로는 의료계의 관심이나 협조를 얻기 힘들다. 단순히 성실하게 납부하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차별을 두기 위한 것이라는 대국민 홍보만도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건강보험료 체납자로부터 밀린 보험료를 징수하기 위해 그간 공단은 무슨 일을 했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보험자인 공단은 이제 보험료 체납자나 자격상실자들의 관리까지 요양기관에 일방적으로 떠넘겼다. 이미 ‘하는 일이 없다’는 비판과 더불어 ‘해체하라’는 격한 요구까지 받고 있는 공단이, 그나마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던 임무마저 의료기관들에게 떠넘긴 꼴이다. 그럼 도대체 공단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그렇게 비대한 조직을 운영해야만 하는 존재의 이유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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