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산업


[청년의사 신문 이혜선]

지난해 정부는 신약개발 독려 정책을 내놓으며 그 일환으로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임상시험수탁전문기관) 육성을 강조했다. 전문 임상시험수탁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지금까지 ‘임상시험 대행기관’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CRO가 신약개발에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잠재가치가 있기에 주목받는 것일까.

CRO는 왜 ‘지금’ 주목을 받나

우리나라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는 제약산업의 핵심은 ‘신약’ 개발이다. 이 신약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단계가 ‘임상시험’이다. 특정 질환 치료에 가능성을 보인 신 물질을 발견하고, 전임상에서 1상, 2상, 3상 임상시험을 거쳐야만 하나의 신약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으로 탄생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과거보다 현재 한층 더 어려워지고 있고,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기존 의약품 보다 월등한 신 물질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발견한다 해도 과거와 달리 절차, 신뢰도 보증, 피험자 보호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임상시험 조건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임상시험 규정대로라면 ‘아스피린’은 신약으로 허가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유머일 정도다. 임상시험은 신약을 개발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행되다가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호주, 아시아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CRO의 탄생을 가져왔다.

신물질 발견 및 검색, 비임상, 1상까지는 제약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이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2상, 3상, 4상은 전문기관인 CRO에 위탁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CRO산업이 발아한 1990년대 초에는 중소규모의 바이오·의약품 벤처기업들이 이런 형태로 신약을 개발했지만, 그 유용성이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굴지의 다국적제약사들까지 CRO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퀸타일즈, 피피디, 아이콘(ICON), 파렉셀 등과 같은 글로벌 CRO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다.

CRO가 본격적으로 탄생 성장한 것은 불과 30여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성장 속도는 가파르기만 하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신약개발에 쓰인 R&D 비용은 약 150조원(2011년 기준)에 이르며 이 중 임상시험산업분야에 그 절반 이상인 약 86조원이 투자됐다. 이 분야를 대표하는 전 세계 CRO시장은 약 215억달러(2010년 기준, 약 21조원) 규모로 해마다 10%씩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CRO의 현주소는?

국내 임상시험을 이야기할 때 ‘서울’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은 2012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이 진행된 도시로 우뚝 섰다. 이는 곧 한국의 임상시험 인프라가 세계적 수준임을 반증하는 지표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임상시험 분야에 있어 양적·질적으로 급성장을 거듭해 왔다.

국내 임상시험승인건수는 1998년 42건에 불과했으나 2010년 439건, 2011년 503건, 2012년 670건, 2013년 607건으로 2013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증가했다. 이에 더해 안전성평가연구소(KIT)의 미국 FDA 적격 승인을 계기로 비임상(GLP) 부문도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CRO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1997년 국내 1호 CRO업체인 C&R Research가 설립된 후, 현재 드림CIS, LSK, 서울의약연구소 등 25개 가량의 CRO가 운영되고 있다. 산업 규모는 2,500억원대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아직까지 국내 CRO 중에서 다국가 임상시험을 맡아 진행할 곳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내 CRO들은 대부분 3상이나 4상 비중이 높고, 임상시험의 꽃이라 불리는 1, 2상 초기임상시험을 담당하는 곳은 많지 않다.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이 저조한 탓도 있지만, 아직 국내 CRO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CRO중에는 유일하게 C&R Research가 중국 베이징에 지사를 내고 해외 임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또한 드림CIS가 최근 리노스 그룹과의 합병을 통해 글로벌 CRO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정도가 국내 CRO산업의 현주소다.

정부, CRO 육성에 팔 걷었다

임상시험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정부는 최근 CRO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CRO 육성에 나섰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CRO 육성정책이 포함됐다. CRO육성정책은 복지부, 식약처,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각 나눠 진행하고 있다.

우선 복지부는 전문인력 양성, 식약처는 아시아지역 다국가 임상이 가능한 CRO 3곳 육성, 산자부는 자료관리 등 시스템 구축지원을 할 예정이다. CRO 전문인력 양성은 국가임상시험사업단에서 실시한 ‘임상시험 전문인력 인증시험’ 시범사업을 토대로 전문자격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식약처는 2017년까지 다국가 임상이 가능한 CRO 3곳을 육성할 방침으로 국내 CRO의 신뢰와 실력을 높이기 위해 ‘CRO 인증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식약처는 올해 바이오의약품협회에 인증제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로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는 내년 초쯤에는 본격적으로 인증제가 도입될 방침이다.

산자부는 임상시험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2015년부터 자료관리 및 프로젝트 관리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다.

CRO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임상시험은 DM(Data management)과 통계 분야에서 많은 국제적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업계의 노력만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관리와 개선이 필요해 정부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언이다.


CRO 육성, 아직 갈길이 멀다

이같은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 CRO업계는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내다보고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내 CRO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나선 것이 무엇보다 반갑다.

드림CIS 최원정 대표는 “1상과 2상 임상에 대한 CRO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전문가를 육성하고 보유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임상시험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인력은 CRA(Clinical Research Associate)와 CRC (Clincal Research Coordinator), CTA(Clinical Trial Assistant) 등이 있다.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가는 임상시험 전체를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CRA인데 이들의 이직률이 꽤 높은 편이다. 연봉, 업무강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국내 CRO입장에서 한 명의 전문인력도 아쉬운 상황이다.

또 다른 국내 CRO 관계자 역시 “CRO업계는 수요에 비해 전문인력의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다. 국가차원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면 CRO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CRO 인증제 역시 국내 CRO들이 반기는 정책 중 하나다.

현재 한국제약협회에서 CRO자율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CRO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임상시험 의뢰자에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해 임상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2012년에 시행된 제도다. 다만, 이는 각 업체가 자율적으로 등록하는 것으로 CRO인증제와는 다르다.

CRO인증제는 신뢰할 만한 CRO를 정해 국가차원에서 인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 CRO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정부의 바람대로 2017년까지 다국가 임상(아시아지역)이 가능한 CRO를 육성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다국가 임상이 가능하려면 각 나라의 허가규제를 알고 있어야 하며 천문학적 비용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임상시험 의뢰자가 국내 CRO를 얼마나 이용할지도 미지수이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이고 국내 제약사들도 다국적 CRO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양약품도 얼마 전 글로벌 진출을 위해 세계 1위 CRO인 퀸타일즈와 손을 잡았다.

해외 곳곳에 지사가 있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다국적 CRO와 경쟁하기에 국내 CRO의 기반은 아직 약하다. 국내 CRO가 발전하기 위해서 제약사의 신약개발 활성화와 함께 정부의 예산 및 국내 CRO를 활용할 수 있는 저변을 만드는 추가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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