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박탈감을 넘어 생존의 문제…신포괄수가제, 의료체계 파괴 뇌관될 수도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포괄수가제란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하는 진료에 대해 질병마다 미리 정해진 금액을 내는 제도다. 같은 질병이라도 합병증이나 타 상병 동반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해 전국 의료기관에서 포괄수가제 적용을 받는 행위는 4개 진료과의 7개 질병군이다.

우선 안과의 경우 ▲백내장수술(수정체 수술), 이비인후과의 경우 ▲편도수술 및 아데노이드 수술, 외과의 경우 ▲항문수술(치질 등) ▲탈장수술(서혜 및 대퇴부) ▲맹장수술(충수절제술) 등이 포괄수가제 대상에 포함됐다.

산부인과의 경우 조금 특별한데, 우선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제왕절개분만이라는 행위가 포괄수가제에 포함됐다. 문제는 거기에 더해 ▲자궁 및 자궁부속기(난소, 난관 등)수술(악성종양 제외)이 포괄수가제에 포함된 것인데, 쉽게 말해 산부인과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장기가 포괄수가제에 묶인 것이다. 산부인과 내에서는 전체 산부인과 수술 중 60% 가량이 포괄수가제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과들의 경우 한두 개 수술이 포괄수가에 포함된 것에 비하면 실질적으로 현재 포괄수가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곳은 산부인과라는 의미다. 이상의 7개 질병군으로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는 응급진료를 위해 구급차를 이용하면서 받는 응급의료 이송처치료와 각종 수술 후 통증관리를 위한 자가통증조절법 등을 제외한 진료비의 20%만 부담하면 된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후 환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으로 ▲본인부담금 감소와 보장성 강화 ▲간편한 병원비 계산 ▲적정한 진료 보장 등을 꼽았다. 또한 의료기관에 돌아가는 이익으로는 ▲의료기관의 경영 효율성 증가 ▲진료비 심사로 인한 마찰 감소 ▲병원 진료비 청구와 계산방법 간소화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속도 향상 등을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시수술’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의료계에서 포괄수가제와 관련해서 가장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고 있는 것은 ‘동시수술’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는 4개 과에서 공통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부분인데, 각 과별로 동시수술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다빈도 사례가 있을 정도다.

특히 외과의 경우 포괄수가제 대상 질병과 검사를 같이 진행해야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탈장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가 속이 쓰리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의료기관에서 내시경을 공짜로 해줘야 하는 상황을 겪게 된다. 검진을 따로 받는 형식을 취해야 하는데, 환자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맹장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의 장에 작은 혹이 있어서 떼어줘도 수가는 맹장수술만 받을 수 있다.

▲맹장이 의심되는 환자가 임산부일 경우 CT를 찍을 수 없기 때문에 MRI를 찍어야 한다. 행위별수가제라면 환자에게 이야기하고 찍으면 되지만 포괄수가제에서는 안 된다. 수십만원 하는 검사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음파를 이용한다. 고가검사에 제한이 생기는 사례다. 이런 사례를 두고 MRI를 찍지 않았다고 의료진을 나무랄 수 없다. 결국 환자가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산부인과의 경우 주로 비뇨부인과 영역의 수술들이 문제다. ▲대표적으로 자궁탈출증이 있는데, 이 경우 보통 자궁 적출을 하고 질 성형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수가는 자궁 적출과 관련해서만 받을 수 있다. ▲제왕절개수술을 하다가 난소에서 혹을 하나 떼어도 수가는 제왕절개만 받을 수 있다.

산과의 경우 고위험산모의 분만 시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고위험산모가 입원했을 때 산부인과의사는 최대한 분만을 늦추고 자연분만을 유도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고위험산모가 입원한 시점부터 6일 내 제왕절개수술을 할 경우 그 사이에 환자에게 사용한 각종 약물치료 등의 비용을 받을 수 없고, 제왕절개수술 수가만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고위험산모가 입원했을 때 산부인과 의사들이 좀 더 빨리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와 태아를 생각해 자연분만을 유도하다 6일 내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선택할 경우 의료기관이 손해를 입기 때문에 무리한 자연분만을 고려하지 않고 수술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김병기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포괄수가제특별위원회)는 “예전 같으면 한 번 입원해서 두 수술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러기 힘들다”며 “실제 학회에서 몇 개 병원을 표본조사했을 때 자궁수술하면서 요실금수술을 받는 경우가 확 줄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 그 환자는 지금 어떻게 있는지가 문제”라며 “수술을 하나만 받거나 다시 입원해서 수술 받을 텐데, 모두 환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수술에 관한 문제에 대해 복지부는 ‘포괄수가제에 포함된 수술의 수가는 모두 더해 평균을 낸 것이기 때문에 동시수술에서 수가를 하나만 받게 되더라도 다른 쪽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렇게 됐을 때 플러스 되는 수술을 하는 쪽과 마이너스 되는 수술을 하는 쪽이 갈리기 때문에 한 쪽은 계속 손해, 다른 쪽은 계속 이득을 보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수술 문제는 향후 의료계와 복지부가 포괄수가제 개선과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했을 때 신의료기술 도입 저해와 함께 가장 큰 이슈가 될 전망이다.

4개과의 ‘공통’ 문제점

포괄수가제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포괄수가제와 관련된 산부인과와 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4개 학과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부분과 개별적으로 느끼고 있는 보완점을 각각 따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지금까지 언론 등을 통해 많이 공개된 내용이 대부분이고 후자는 시행 1년여가 되면서 현장에서 나오고 있는 목소리로, 각 학회는 현재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데 애를 쓰고 있다.

우선 공통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면 ▲저수가 ▲신의료기술 도입 저해 ▲오히려 늘어난 페이퍼 워크 ▲의료전달체계 파괴 등을 꼽을 수 있다.

저수가의 경우 포괄수가제는 물론 한국의료 모든 문제점의 원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울 것이 없을 지경이다. 신의료기술 도입 저해 또한 저수가로 인해 촉발되는 문제기 때문에 이어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신의료기술 도입 저해=질 하락

포괄수가제로 묶인 질병군의 경우 의료진이 신의료기술을 도입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 그대로 질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어차피 포괄수가로 받는 수가가 정해진 상황에서 아무도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산부인과에서는 자연분만과 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술이 포괄수가제로 묶인 상황에서 지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보고가 없는 상황이다.

김병기 교수는 “포괄수가제가 된 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해도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장비와 수술법을 통해 포괄수가제에 최적화하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자원을 적게 소비해 결과를 비슷하게 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대학병원의 역할 중 하나인 연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는 수술 상처를 얼마나 예쁘게 하는가, 얼마나 빨리 회복시키는가, 얼마나 장기의 기능을 잘 회복시켰나 등을 (복지부의 질 지표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포괄수가제 하에서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 실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우려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편도수술에서 사용하는 코블레이터(coblator)를 모든 의료기관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도 각 과는 포괄수가제 하에서 시행하지 못하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실 사례를 모집하고 있다.

치료에 신의료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환자에게 대입하면 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전달체계도 파괴 중

복지부조차 포괄수가제 시행 시 의료기관에 돌아가는 이익으로 설명하고 있는 ‘병원 진료비 청구와 계산방법 간소화’를 정면으로 뒤집는 ‘늘어나는 페이퍼 워크’의 경우, 현장에서 상급종합병원은 물론 의원급 의료기관까지 한목소리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외과연구재단 강중구 보험이사(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진료부원장)는 “예를 들어 맹장수술을 한다면 포괄수가 관련 청구를 하고 행위별 치료 내역을 같이 내야 한다. 거기에 포괄수가제 질 향상 점검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같이 내야 한다”며 “포괄수가제를 하면 행정 절차가 간단해진다고 했는데 오히려 이런 혹들이 더 붙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늘어나는 페이퍼 워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의원급 의료기관은 더하다. 직원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런 문서 작성을 위해 직원을 더 뽑아야 할 지경이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포괄수가제가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차피 수가도 낮아 이익도 얼마 없는데 일거리만 많아지고 수술방 운영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아예 관련 수술을 하지 않고 큰 병원으로 떠넘기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대한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 신광철 공보이사는 “중증 의심환자는 포괄수가제 내에서 의사들이 수술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병원으로 수술환자가 몰리는 것은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후 더 심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일산병원 안과 박철용 교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수술장을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안 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결국 1차 의료기관에서 맡아야 하는 환자들이 2~3차 의료기관을 찾게 된다. 실제로 충분히 1차에서 수술할 수 있는 백내장 환자들이 (상급의료기관으로) 많이 오는 느낌이 있다”고 전했다.

조금 더 특별한 산부인과의 고민

포괄수가제를 안고 있는 4개과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산부인과의 경우 조금 더 특별한 경우다. 타 과의 경우 특정 행위가 포괄수가제에 포함됐지만 산부인과의 제왕절개수술과 자궁 및 자궁부속기(난소, 난관 등)수술(악성종양 제외)이 포함되면서 자연분만과 암 치료 외 거의 모든 수술이 포괄수가제 영역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외과에 이 상황을 대입시키면 항문수술(치질 등)이 아니라 ‘대장’, 안과로 치면 백내장수술(수정체 수술)이 아니라 ‘눈’이 포괄수가제에 포함된 셈이다.


김병기 교수는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확대 시범사업 때는 이렇지 않았다. 본사업 들어가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지만 시간적으로 분류가 쉽지 않고 나중에 보완하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산부인과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타 과에 비해 더욱 크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왜 우리가 이런 꼴까지 당해야 하느냐’는 울분이 나오는 까닭이다.

산부인과의 경우 7개 질병군 확대 포괄수가제 대상을 정할 때 복지부로부터 ‘2016년까지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와 신포괄수가제, 행위별수가제를 검토해 새로운 수가체계를 전 과로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 이야기를 믿고 새로운 수가체계에 빨리 적응하고 복지부로부터 ‘다른 과보다 빨리 도입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포괄수가제 도입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실제 산부인과는 복지부로부터 ‘생식력을 보전한 수술의 경우 일정부분 수가 가산’이라는 가산제를 약속받아 혜택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자궁을 적출해야 하는 여성의 경우 의사의 노력으로 임신이 가능하게 자궁을 남겼다면 10만~20만원 정도의 가산금을 받는 식이다.

하지만 포괄수가제를 도입하고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산부인과는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다. 복지부의 언질이 점점 실현가능성이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손영래 과장은 최근 학회 등 의료계 행사에 참석해 “현재 포괄수가제 확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부인과의 경우 이번 보완 논의에서 최대 목표는 다시 행위별수가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시행 1년이 돼가는 시점에서 실현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만큼 산부인과의 우려는 크다.

의료기관 믿고, 파격 보완책 시행해야

의료계에서는 포괄수가제 내에서 환자가 원할 경우 추가적으로 치료재를 활용하고 비용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포괄수가제에 의사 행위가 포함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의 경우 허용했을 때 의료기관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추가되는 사항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와 기존 행위별 수가와 별 차이가 없어진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처음 포괄수가제를 시행했을 때 의료계가 복지부의 ‘선 시행 후 보완’을 믿었듯이 복지부도 의료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병기 교수는 “이런 제안을 하면 ‘의료기관이 남용할 것’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제도 시행 자체가 불완전했던 것을 감안해 환자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결국 신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필요해도 사용하지 못하는 (유착방지제 등) 치료재료는 물론, 신의료기술까지도 환자가 원할 경우 사용할 수 있게 해 숨통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문제는 정부가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과 서울의료원 등 39개 공공병원에서 신포괄수가제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포괄수가제에는 ▲의사의 직접진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식대 등이 별도 계산돼 의사의 직접진료까지 포괄수가로 묶여 있는 지금보다는 정상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포괄수가제는 비교적 단순한 외과수술에 적용한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와 다르게 4대 중증질환(암·뇌·심장·희귀난치성질환)과 같이 복잡한 질환까지 포함시키고 있고 전과로의 확대를 염두에 둔 정책이기 때문에 향후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다.

이 외에 안과의 경우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백내장수술 환자는 포괄수가제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산부인과의 경우는 비뇨부인과 분야 전부를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검토 중이다.

복지부는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향후 심평원 내 포괄수가제 실무협의체를 이용해 의료계와 보완 논의를 시작할 참이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정부가 정말로 포괄수가제를 확대할 생각이 있다면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를 하고 있는 학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포괄수가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것 자체가 의료계를 설득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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