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한국형 동네의원 '헬로메드 컨비니언스 클리닉' 개설한 이정욱 박사

의료선진국인 미국에 한국의 일차의료시스템을 심겠다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시작한 한국 의사가 있다.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한국형 동네의원’인 ‘헬로메드 컨비니언스 클리닉(HelloMed Convenience Clinic, 이하 헬로메드)’을 개원한 이정욱 박사(신경과 전문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보바스기념병원 부원장으로 근무하던 이 박사는 안식년을 받아 지난 2011년 미국으로 경영학 공부를 떠났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밟은 이 박사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바로 ‘한국형 동네의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원을 하기보다 봉직의로 병원에 근무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동네의원들이 힘들지만 오히려 미국 상황에서는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설립한 헬로메드는 어전트 케어(Urgent care)와 리테일 클리닉(Retail Clinic) 중간 단계로, 기존 미국 사회에는 없던 시스템이다. 준응급진료기관인 어전트 케어는 응급실 하위 개념으로 응급환자들이 예약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소규모 의료기관이며 리테일 클리닉은 의사 없이 간호사가 진료를 하고 있는 곳이다. 이 중간 단계로 구상한 헬로메드는 의사가 상주하며 진료도 보는 리테일 클리닉이라고 할 수 있다.

헬로메드는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주일 내내 문을 열고 예약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진료비도 어전트 케어 등 다른 의원보다는 낮게 책정해서 운영하고 있다. 동네의원 ‘탐방’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 박사를 지난 12일 만나 그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들었다.

신경과 전문의인 이정욱 박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한국형 동네의원’인 ‘헬로메드 컨비니언스 클리닉(HelloMed Convenience Clinic, 이하 헬로메드)’을 개원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이정욱 박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한국형 동네의원’인 ‘헬로메드 컨비니언스 클리닉(HelloMed Convenience Clinic, 이하 헬로메드)’을 개원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Q. 미국에서 한국형 동네의원을 개원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 미시간대에서 MBA 과정을 공부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학생들의 경우 많은 보험료를 내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만 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병원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이 어느 곳인지도 잘 모른다. 또 예약하기도 힘들다.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고 접근성은 떨어진다.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약 없이는 진료를 받기 힘들며 예약을 하더라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의사들은 하루에 10명 정도만 진료해도 수익이 되기 때문에 신환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인다. 전문의에게 한번 진료를 받으면 진찰료만으로 보통 400달러를 내야 한다.

Q. 일차의료기관을 가면 되지 않나.

- 미국은 일차진료 의사가 부족하다. 전문의가 더 많은 보수를 받기 때문에 6~7년이 걸려도 전문의 자격을 따려고 한다. 전문의들은 일차진료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공백이 생기고 있다. 오바마케어가 도입되면서 보험이 없던 사람들도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상황이 생기다보니 오히려 일차진료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는 간호사가 진료를 보는 리테일 클리닉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미국에서는 생소하게 여겨진다. 그게 바로 일차진료이고 그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형 동네의원을 미국에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Q. 리테일 클리닉이 일차 진료의 일정부분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 리테일 클리닉의 사업 모델은 진료보다는 약을 파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리테일 클리닉 대부분이 독립적으로 개설돼 있지 않고 미국 대형약국 체인인 CVS나 월그린 등 대형약국이나 쇼핑몰 안에 있다. 약국 입장에서 보면 리테일 클리닉은 약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그나마 리테일 클리닉이 없는 곳도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미시간주 앤아버에는 리테일 클리닉이 없다.

Q.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많지는 않은가 보다.

-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부나 동부처럼 인구 밀집지역이나 히스패닉(hispanic) 등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많은 지역에서는 싼 가격에 NP(Nurse Practitioner, 개업 간호사)나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봐주는 경우가 많다. 리테일 클리닉에 대한 법은 주(州)마다 다르지만 간호사 한 명이 근무하면서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내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리테일 클리닉에 의사는 없지만 의사의 관리·감독을 받게 돼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질 관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Q. 미국의사면허를 따지 않았다고 들었다. 미국 면허 없이 클리닉을 개설하는 게 가능한가.

- 주마다 법이 다른데 대부분 미국 면허를 갖고 있는 의사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기업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곳도 많다. 미시간주는 기업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걸 막아놓았는데, 변호사를 통해 한국 의사면허를 갖고 있는 전문가라는 것을 인정받아 의료기관을 개설하되 진료를 하지 않는 쪽으로 허가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 있는 ‘헬로메드 컨비니언스 클리닉(HelloMed Convenience Clinic)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 있는 ‘헬로메드 컨비니언스 클리닉(HelloMed Convenience Clinic)

Q. 한국형 동네의원이라는 콘셉트로 개원한 헬로메드는 리테일 클리닉과 무엇이 다른가.

- 리테일 클리닉과 어전트 케어의 중간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 병원 대부분은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예약을 하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들로는 응급실, 그 아래 개념인 어전트 케어, 그리고 리테일 클리닉이 있다. 헬로메드는 리테일 클리닉처럼 약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번화가에 독립적으로 개설돼 있으며 의사도 고용해 진료를 보도록 하고 있다. 어전트 케어보다는 의료 인력 등에서 규모를 작게 해 비용을 줄이되 진료비도 더 싸게 했다. 또 리테일 클리닉보다는 의료의 질을 높여 경쟁력을 갖췄다. 다른 곳보다 가격을 낮게 책정하려고 한다. 보통 50~100달러 사이로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Q. 의료진은 몇 명이나 되나.

- 미시간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했던 전문의 1명과 내과 전문의 1명 등 의사 2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환자를 진료하는 NP도 2명 있다. 환자의 3분의 2는 NP들이 보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의사가 본다. 그 외 오피스매니저 2명은 중국인이며 한국인도 1명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문을 열고 있으며 평일에는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진료를 본다. 앞으로는 진료시간을 더 늘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료할 계획이다.

Q. 중국인 오피스매니저를 2명이나 고용한 이유가 있나.

- 중국 유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이 지역(미시간주 앤아버)에는 미시간대가 있는데, 미시간대는 미국 전체 대학 중에서도 8번째로 유학생을 많이 받는 곳이며 중국 유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개원한 후 지금까지 헬로메드를 찾은 환자의 60%가 미국인이고 40%만이 아시아인이었다.

Q. 헬로메드 내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은 뭐가 다른가.

- 역할 차이는 거의 없지만 의사인 원장(Medical Director)이 간호사들이 작성한 차트를 다 검토한다. NP는 RN(Registered Nurse, 공인등록간호사) 중 석사를 따고 시험을 봐서 독립적인 처방권을 가진 간호사다. 그렇다고 권한을 남용하지는 않는다. 방어적으로 진료를 많이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의사한테 컨펌을 받는다.

Q. 환자들은 얼마나 되나.

- 아직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초창기여서 많지는 않지만 점점 늘고 있다. 감기나 두드러기, 발진 등 경증질환자들이 많이 오고 예방접종을 위해서도 찾는다. 한국 동네의원에서 주로 보는 질환들이다.

Q. 미국은 한국처럼 단일보험체제가 아니어서 여러 민간보험사와 일일이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크고 작은 보험회사를 모두 합쳐 100개 정도 된다.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으려면 의사나 간호 인력을 제대로 갖췄는지 등에 대한 심사를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모든 보험회사와 다 계약을 맺을 수는 없으니 일단 미시간주 앤아버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가입한 보험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미시간대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인터넷 등을 서치해서 파악했다. 또 클리닉 문을 연 뒤 보험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서 분석을 했다. 나중에 진료비를 청구하려고 하니 보험 계약을 하기 전에 진료를 받은 환자를 소급해 주는 보험회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보험회사도 있어서 손해를 보기도 했다. 제일 까다로운 곳이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여서 이곳과 계약을 맺는 데만 4~5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이 까다롭지만 일단 계약을 체결하면 그 순간부터는 의료기관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생긴다.

Q. 계약을 한 보험회사는 몇 곳이나 되나.

- 공공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외에 블루크로스 블루쉴드(Blue Cross Blue Shield), 유나이티드 헬스(United Health), 에트나(Aetna), 시그나(CIGNA) 등 총 7곳과 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Q.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경우 다른 민간보험에 비해 수가가 낮아 의사들이 해당 보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하기 꺼려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 보통 메디케어가 민간보험에서 주는 가격의 80% 정도를 준다. 환자를 진찰하고 소변 검사 등 기본적인 의료행위를 하면 보통 140달러 정도 받는데 메디케어에서는 100~120달러 정도 준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만 받아도 클리닉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진료하는 환자 수만 많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혈액 검사 등은 인근에 있는 미시건대학병원에 의뢰해 분석 결과를 받고 있다.

Q. 진료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 있나.

- 법적으로 가능하면 물리치료실도 운영해볼 생각이다. 또 직장인들을 위한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CT나 MRI로 온몸을 훑는 건강검진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동네의원에서 하는 수준의 건강검진을 실시하려고 한다. 이미 앤아버 지역 시내버스 회사와 조인해서 직원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Q. 미국 진출을 구상하고 있는 한국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일차의료는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려도 세팅만 해놓으면 한국형 동네의원은 미국 의료시장에서 먹힐 것이다. 대형병원의 수출만 해외진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사전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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