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앞두고 불신임 회장 피선거권 제한 추진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보궐선거,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등 법정 공방, 정기대의원총회, 사원총회…. ‘회장 탄핵(불신임)’ 사태를 겪은 대한의사협회 앞에 놓인 일들이다. 의협 106년 역사상 처음 벌어진 회장 불신임으로 의료계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안개정국을 걷고 있다. 수장을 잃은 의협 집행부는 즉각 직무대행체제로 전환해 회무를 이어가고 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의협은 보건복지부와 의정합의 이행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야 하며 5월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수가협상도 진행해야 하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정치싸움’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의원 136명이 ‘노환규 불신임’ 찬성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19일 오후 5시 서울 이촌동 협회 회관 3층 회의실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노환규 전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출석대의원 178명 중 136명 찬성으로 의결(반대 40명, 기권 2명)했다. 전체 대의원의 73.6%가 참석해 이들 중 76.4%가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임총에 모이는 대의원이 162명(불신임안 의결을 위해서는 재적대의원의 3분의 2 이상 출석해야 함)을 넘으면 노 전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은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회의장에 대의원 178명이 모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노 전 회장 불신임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대의원, 의협 집행부와 직원만 회의장 입장이 허락되는 등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임총에서는 조행식 대의원이 불신임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 후 즉각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불신임 대상인 노 전 회장은 소명 기회도 얻지 못했다.

대의원회 변영우 의장은 임총이 끝난 직후 기자실을 찾아와 노 전 회장 불신임 이유에 대해 “대의원총회 의결 사항을 위반한 게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그 외에도 의협의 명예를 훼손한 것들이 많았다”며 “중요한 건 노 회장이 의협 정관을 위반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 의장은 이어 “보궐선거는 정관에 따라 오늘부터 60일 이내에 하도록 돼 있다”며 “지금부터 집행부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준비해야 한다. 이번 직무대행 체제는 선거를 관리하는 체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보궐선거 누가 나오나

변 의장의 말대로 의협은 앞으로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치러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노 전 회장이 잔여 임기를 1년 이상 남긴 상태에서 불신임됐기 때문이다.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회장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시의사회 임수흠 회장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의료계 내 정치싸움이 탄핵정국에서 선거정국으로 넘어간 셈이다.

노 전 회장과 변 의장이 ‘동반 사퇴’를 통해 파국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던 중재가 실패로 돌아간 원인도 보궐선거 실시 여부를 둘러싼 이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회장은 보궐선거보다는 대행체제가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임기 2년이 지난 뒤인 5월 3일경 동반사퇴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변 의장은 5월 전에 사퇴하고 보궐선거를 치러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 이면에는 동반사퇴 이후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는 신경전이 깔려 있다.

결국 변 의장의 뜻대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지만 지난해 정관개정으로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뀐 선거제도가 변수다. 정관은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선거관리규정은 여전히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가 기준이어서 오는 27일 열리는 정기대의원총회에서 관련 규정도 변경해야 한다.

노 전 회장의 보궐선거 출마설이 나오는 이유도 직선제로 바뀐 선거제도에 있다. 노 전 회장이 직선제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출마해 일반 회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는다는 시나리오다. 노 전 회장은 출마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지만 대의원회는 오는 27일 열리는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을 받은 회장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관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관에는 불신임 회장에 대한 피선거권 제한 규정이 없다. 대의원회가 마련한 정관개정안은 노 전 회장의 재출마 가능성을 우려한 듯 ‘불신임된 회장은 3년 동안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받아들여질까


노 전 회장이 법원에 제출할 예정인 임총 결정 효력정지가처분 신청도 변수다. 그나마 보궐선거가 진행되는 도중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혼란이 최소화되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라면 상황은 황당하게 꼬인다. 노 전 회장이 의협으로 복귀하면서 새로 선출된 회장은 없던 일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친(親)노환규 인사로 분류되는 김경수 회장 직무대행(부회장, 부산시의사회장)을 중심으로 준비된다. 노 전 회장이 임명한 의협 상임이사들도 모두 그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수장이 물러났는데도 의협 집행부가 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노 전 회장이 제출하는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노 전 회장과 의협 집행부는 정관 제20조의2(임원에 대한 불신임)에 명시된 불신임 사유 3가지 중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때, 단 의협회무의 수행으로 인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정관 및 대의원총회의 의결을 위반해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위반한 때 ▲협회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한 때 회장을 포함한 임원을 불신임할 수 있다.

의협 집행부 한 관계자는 “노 전 회장은 정관상 불신임을 받을 수 있는 3가지 조항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조행식 대의원이 제출한 불신임 동의서(95명)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비공개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욱이 탄핵(불신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만 듣고 노 전 회장이 소명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대한한의사협회도 지난해 9월 사원총회를 열고 일부 임원을 해임했지만 한쪽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됐다는 이유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강조했다.

대의원회가 노 전 회장 불신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관을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의협의 한 상임이사는 “대의원회가 임총 당일 1층부터 3층까지 용역(사설경호원)을 배치했는데 임총이 열리는 회의장은 대의원회가 관리한다고 해도 그 외 복도 등 회관의 다른 시설은 의협 집행부가 관리하는 것”이라며 “노 전 회장이 임총 회의장은 물론 회관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임총을 참관할 수 있는 일반 회원들의 권리도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신임안을 발의한 이유가 전부 사실은 아닌데 그에 대한 사실 확인이나 찬반 토론도 없이 바로 투표를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의원회 측은 노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상정해 의결한 임총이 절차상 하자 없이 치러졌기 때문에 법원이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소속 한 대의원은 “대의원 178명이 출석해 이들 중 136명이나 노 전 회장 불신임에 찬성했다. 무슨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는 것이냐”며 “법원이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원총회 개최 여부, 정총에 달렸다

오는 5월로 예고된 ‘대한민국 의사총회’(사원총회)도 태풍의 눈이다. 현재로서는 그 성사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의협 집행부는 전체 이사회에서 의결한 만큼 노 전 회장 없이도 개최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사원총회를 열고 대의원회 해산과 정관개정을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다. 정관개정안에는 ▲대의원 직선제 ▲시도의사회 임원의 대의원 겸직 금지 ▲회원총회(사원총회) 및 회원 투표 실시 근거 마련 등이 담긴다. 대의원총회보다 상위 개념인 회원총회를 도입해 대의원 불신임 등 대의원회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현행 정관에는 회장과 임원만 불신임할 수 있으며 대의원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에 의협은 정관개정안에 ‘임원 또는 대의원 불신임’ 조항을 신설했다. 단, 회장과 임원은 회원총회는 물론 현재처럼 대의원총회에서도 불신임할 수 있도록 했지만 대의원에 대해서는 회원총회에서만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또한 노 전 회장을 배제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지난 3월 30일 임총 의결 사항이 무효라는 안건도 상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는 27일 열리는 정총에서 의협 집행부가 부의 안건으로 상정한 정관개정안이 의결된다면 사원총회는 개최되지 않는다. 의협은 지난 14일 사원총회를 5월로 연기하면서 “정총에 상정할 정관개정안의 통과여부에 따라 사원총회를 개최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정총 결과를 확인한 후 사원총회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회장 불신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선장을 잃은 의협 앞에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자욱한 상태다. 새로운 선장을 찾든, 아니면 다시 ‘노환규호(號)’ 이름을 붙이든, 하루 빨리 항로를 제대로 찾아 항해하지 않으면 침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환규 전 회장 불신임된 날, 의협엔 무슨 일이 있었나]

사설 경호원들이 점령한 의협 회관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를 두 시간여 앞둔 지난 19일 오후 3시, 의협 회관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이들은 ‘진행요원’이라고 적힌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임총이 열리는 3층 대회의실부터 대의원들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는 1층까지 2~3명씩 짝을 지어 서 있었다. 이들 경호원 중 한 명은 “의협 대의원회가 고용했고 총 20명이 왔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 회장 불신임에 반대하는 회원들도 의협으로 모였다. 전국의사총연합 나경섭 공동대표는 이날 오후 4시경 ‘의협회장 탄핵하면 대의원회 해산하라. 내부 분열 유도하는 노 회장도 사과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의협 회관 출입문에 서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를 본 한 회원이 노 회장 불신임은 정당하다며 1인 시위를 하지 말라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목검 들고 왔던 양재수 의장, 이번엔 언론통제


사설 경호원까지 고용한 의협 대의원회는 임총을 비공개로 진행하기 위해 기자들의 출입마저 철저히 막았다.

19일 오후 4시 임총이 열리는 협회 회관 3층 회의실 앞에는 경호원 6~7명이 문을 가로막고 서서는 기자들의 출입은 물론 사진촬영도 저지했다. 이처럼 언론까지 통제하는 상황은 경기도의사회 대의원회 양재수 의장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이날 오후 3시 30분경 3층 회의실에 나타난 양 의장은 직원들을 향해 “내가 오늘 임총을 진두지휘하기로 했으니까 내 말을 따라 달라”며 임총 준비를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그러면서 취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에게도 “내가 임총 질서유지 책임자다. 변영우 의장이 오늘 그렇게 결정했다. 기자들도 회의실에서 모두 나가라”며 기자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양 의장은 지난 3월 30일 열린 임총에도 목검을 들고 와 회의장 맨 앞에 앉아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그러나 대의원회 운영위원들은 이번 임총을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적은 없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불신임 임총 시작…회의장 앞에선 몸싸움


노 전 회장 불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임총이 언론 취재는 물론 일반 회원의 참관도 거부된 채 철저히 비공개로 시작되면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대의원회가 고용한 사설 경호원들은 명단을 일일이 확인하며 철저하게 대의원들만 회의실에 출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임총을 참관하기 위해 이날 협회 회관을 찾은 회원들과 경호원들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후 5시 16분경 전국의사총연합 소속 회원들은 물론 일반 회원들 10여 명이 임총 참관을 위해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2층 계단에서부터 사설 경호원들에 부딪혔다.

어렵게 3층 대회의실 앞까지 올라온 회원들은 회의실 문 앞에서 경호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회원들은 “왜 일반 회원들의 회의 참관까지 막느냐”, “무슨 근거로 진입조차 못하게 하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경호원들은 대의원이 아니면 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다며 출입을 철저히 막았고 결국 서로 몸싸움까지 벌였다.

노환규 회장도 회관에서 경호원과 몸싸움


사설 경호원들에 의해 저지당한 사람은 일반 회원들뿐만이 아니었다. 노 전 회장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불신임안이 임총을 통과하기도 전이었지만 노 전 회장은 회관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했다.

임총이 시작되기 전 2층 회장실에 있던 노 전 회장에게 2층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경호원들이 막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인의 전화가 왔다. 노 전 회장은 계단으로 내려가 임총이 열리는 3층으로 가려는 게 아니니 통과시켜 달라고 했지만 경호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노 전 회장은 직접 경호원을 뚫고 1층으로 내려가 지인의 손을 잡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경호원들이 노 전 회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노 전 회장은 의협 경비 등의 도움을 받아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 어렵게 저지선을 뚫고 2층 회장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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