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

[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작년 12월 미FDA는 소포스부비어라는 새로운 C형 간염 치료제를 승인했다. 만성C형간염은 간경변증과 간암의 중요한 원인으로 2013년 개정된 대한간학회 만성C형 간염 진료가이드라인은 치료 금기가 아니라면 모두 치료 대상이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만성C형간염은 만성 바이러스성 질환 가운데 드물게 완치가 가능한 병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 페그인터페론과 리바비린 병용으로 60~80%는 완치가 가능하다. 문제는 치료에 실패한 나머지 20~40% 환자로 이들은 간 손상을 일으키는 다른 위험 요인을 피하는 것 이외에 병의 진행을 막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직접 작용 항바이러스제(DAA : Direct-acting antiviral)라고 불리는 새로운 약은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도 80~90% 이상 완치 가능하다. 현재의 표준 치료법인 페그인터페론과 리바비린 병용은 비가역적인 갑상선 기능 이상, 우울증, 탈모, 근육통, 발열, 간기능 악화, 백혈구 감소, 혈소판 감소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부작용이 있고 환자의 10~30%는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 한다. 또 부작용이 우려돼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환자들도 많고, 흔치는 않지만 치료 기간 동안 직장을 쉬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운 약은 약을 중단할 정도의 부작용이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지금까지 치료가 불가능했던 고령환자와 중증 간경변증 환자도 치료가 가능하다. 치료 기간도 짧아져 기존 치료가 6개월 또는 1년 소요되는 것에 비해 새로운 약은 12주 또는 24주만 쓰면 된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이런 DAA가 앞으로 여럿 나올 예정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약의 미국 가격은 정당 1,000달러이다. 하루에 한 정씩 복용하니 12주 치료에 8만5,000달러, 24주 치료에 17만달러가 들어 순수하게 약값만 우리나라 돈으로 1억원 내지 2억원의 비용이 든다. 국내에 출시된다면 가격이 보다 낮아지겠지만 기존 다국적 제약회사의 국내 출시 가격을 보면 절반 이하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높은 가격 때문에 이 약의 국내 출시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출시되더라도 기존 치료에 실패하거나 부작용이 있거나 치료 금기에 해당되어 기존 치료를 할 수 없는 사람들만 제한적으로 급여가 될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장의 책무로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성C형간염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는 가능한 빨리 모두 DAA로 치료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DAA는 발전된 의료 기술이며 부작용이 거의 없고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페그인터페론, 리바비린 병용보다 질 높은 의료 서비스이다.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의료인의 책무를 생각한다면 모든 환자에게 DAA를 권해야 하고 국민건강보험이 DAA를 모든 C형간염 환자가 쓸 수 있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국민건강보험이 DAA를 2차 치료제로 허가하거나 급여를 제한한다면 그 기준은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할 환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한된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면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현대 의료는 개별 의사, 의료기관의 의지로 서비스 수준을 결정할 수 없다. 의료비용의 절반 이상은 공공이 부담하고 있고 선진국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 의사 이외의 다양한 의료인, 의료기사와 협력해야 하며 고가의 장비가 필요해서 의사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이런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최선은 고사하고 적정한 의료서비스 제공도 불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과 사회가 부담할 수 있는 의료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한된 자원으로 사회 전체의 보건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정해 지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상의사가 자신 앞에 있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이자 국민들에게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는 의사 개인의 역할과 더불어 제도적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최선의 의료 서비스’는 의사가 가져야할 개인적인 노력과 마음가짐의 차원이지 실제 모든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고 국민 전체로 보면 그것이 항상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작년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포괄수가제 등에서 이 제도들이 최선의 의료 서비스 제공이라는 전제에 부합하는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2년 의료법에 포함된 이 내용이 현대 의료에 적절한지, 의료인과 의료기관에만 부여해야할 의무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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