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가 대리수술하는 성형외과도…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강남에 몰려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 수술실 하나에 침대 두 개가 놓여 있다. 그 사이에 놓인 파티션 하나로 수술실은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 침대에서는 지방흡입이 한창이고 파티션 너머 다른 침대에서는 쌍꺼풀에 이어 코 수술 중이다. 코 수술을 하던 집도의는 어느 순간 산소포화도측정기가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시 다른 기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3~4분 뒤에 다른 산소포화도측정기가 도착해 교체한 후 수술을 받던 환자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해 보니 50%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응급 상황이었다.

옆방에 있던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달려와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술실에는 앰부백(수동식 인공호흡기)조차 없었다. 다시 3~4분 뒤 앰부백이 도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소마스크와 산소탱크가 없었다. 또 다시 3~4분이 흐른 뒤 산소마스크와 산소탱크가 하나씩 수술실에 도착했다. 그러는 도중 쌍꺼풀과 코 수술을 받던 여고생은 뇌 손상을 입었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9일 강남에 위치한 대형 성형외과병원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성형외과병원은 신사옥으로 이사한 지 하루 만에 진료를 시작했고 수술실도 가동했다. 토요일까지는 다른 건물에서 진료를 하다가 일요일에 이사를 하고 월요일(12월 9일)부터는 새로운 건물에서 진료를 시작한 것이다. 수술실에 앰부백이나 산소마스크 등 응급상황에 필요한 기본 장비들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고 수술부터 시작한 셈이다. 심지어 당시 집도의가 수술 도중 다른 환자를 상담하기 위해 30분 정도 수술실을 비웠다는 증언도 나온 상태다. 이 병원의 시스템이 최대한 많은 환자를 수술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의료사고에 관한 성형외과의사회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성형외과의사회가 자체 조사해 지난 10일 공개한 이 병원의 불법 행위는 ▲유령의사에 의한 대리수술(섀도 닥터) ▲대량 수면마취제 유통을 위한 의사면허대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에게 과도한 근로시간 강요 등이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병원들은 각종 광고를 통해 이른바 ‘유명의사’를 만들어 환자에게 그 의사가 수술할 것처럼 상담을 하지만 실상은 환자에게 수면마취제를 투여해 잠을 재우거나 전신마취 후 대리수술을 하는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한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라고 지적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심지어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대리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제는 외국인들조차 ‘대리수술의사’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대리수술은 마취제 대량 투여로 이어지고 있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대리수술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속여야 하므로 대량의 수면마취제를 투여하게 되고 대량의 수면마취제를 구하기 위해 의사면허를 대여해 의료기관을 계속해서 개설하고 불법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면허대여자를 바꿔가며 운영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근무조건과 과도한 근로시간을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에게 강요하는 문제도 있었다”며 “심지어 격무에 시달린 직원이 퇴직하면 자격증이 없는 간호조무사 학원생들이 그 업무를 대신하기도 했다”고도 밝혔다.

성형수술 공장이 되고 있는 병원들

문제는 이같은 일들이 대형 성형외과병원들 사이에서는 관행처럼 퍼져 있다는 점이다. 성형외과 전문의 10명 이상이 근무하는 대형 성형외과병원들은 마치 ‘성형수술 공장’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병원의 모든 시스템이 환자를 많이 유치해 성형수술로 이어지게 하는 데 맞춰져 있다. 오히려 이번에 문제가 된 성형외과병원은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른 대형 성형외과병원에 비해 유령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적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환자를 만나고 수술할 수 있는 곳이어서 젊은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성형외과의사회 김선웅 법제이사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100% 유령의사로 운영되고 있는 유명 성형외과병원도 있다고 주장했다.

새벽 4시까지 수술을 하고 다시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는 게 일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성형외과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더 많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수술 도중 다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상담을 하러 가는 일이 잦아 수술 받고 있는 환자를 푹 재우기 위해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추가로 투여하는 일도 많다.

성형외과의사회 김선웅 법제이사는 “한 사람이 개원해서 20년 동안 쓸 수 있는 프로포폴을 대형 성형외과병원의 경우 1년에 다 써버리기도 한다”며 “필요한 프로포폴을 유통하기 위해 의사를 고용할 때 ‘필요할 때는 의사면허를 대여해 준다’는 조항을 근로계약서에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술 건수가 중요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코와 이마는 30분씩, 지방 주입은 15분’ 등 수술별로 정해진 시간에 따르도록 강요받고 있다. 병원의 상담실장이 정한 수술법을 의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병원의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았을 때 배상금을 물리는 조항이 근로계약서에 포함되기도 한다. 또한 대리수술에 대한 수당 분배는 물론 상담에서 수술로 이어지는 건수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수술 도중에도 환자 상담을 위해 수술실을 비우는 이유이다. 의사를 채용할 때 수술 실력보다는 “당신의 상담 성공률은 얼마나 되느냐”고 직접적으로 묻는 곳도 많다.


유령의사로 성형수술 배우는 타과 전문의들

하지만 의사들은 스스로 ‘노예’라고 자조하면서도 ‘성형수술 공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더 많은 의사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뿐만 아니라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등 외과계열에 이어 수술과는 거리가 먼 일반의,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도 성형수술을 배우기 위해 대형 성형외과병원을 찾고 있다. 대리수술을 하는 유령의사들 중 상당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나 타과 전문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형외과의사회 차상면 부회장은 “유령의사 중에는 GP(일반의)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환자 상담을 하거나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공을 내걸지 않고 의원을 개설하는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이 점차 늘고 있으며 이들의 상당수가 서울 중에서도 성형외과가 집중돼 있는 강남구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 4,835개소이던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은 2010년 4,954개소, 2011년 5,035개소, 2012년 5,139개소, 2013년 5,186개소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시 강남구였다. 2013년 기준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5,186개소 중 28.2%인 1,461개소가 서울에 개설돼 있으며 이 가운데 316개소는 강남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 지역에 있는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의 21.6%가 강남구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강남구에 있는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대부분은 미용·성형 분야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가격덤핑 → 성형공장 악순환 이어져

이처럼 성형외과 전문의뿐만 아니라 일반의에 타과 전문의까지 몰리며 형성된 성형공화국은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어 비급여 진료 영역을 넓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수가체제에서 버티기보다 비급여 진료 영역인 미용·성형 분야로 갈아타는 의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용·성형 분야에 의사들이 몰리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로 인해 가격 덤핑이 생기고 박리다매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병원을 대형화해 공장처럼 운영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성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대형 성형외과병원들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매월 8억~10억원을 홍보비로 쏟아 붓고 있다. 연간 100억원 이상을 홍보비로 쓰는 셈이다. 홍보비 지출에 가격 덤핑까지 이뤄진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을 수술대에 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

성형외과의사회 차상면 부회장은 “수가가 너무 낮다 보니 비급여 영역인 성형 시장으로 많은 의사들이 몰리고 있다”며 “그 속에서 경쟁을 해야 하니 가격 덤핑이 이뤄지고 덤핑한 만큼 더 많은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자율정화를 위해 성형외과 전문의들에 대한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의사회 홈페이지에 불법행위 신고센터를 개설하는 것은 물론 무분별한 성형수술 과대광고를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성형공화국에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수가 체제를 기반으로 한 왜곡된 의료제도를 바로잡지 않는 한 ‘돈이 되는’ 미용·성형 시장으로 의사들이 몰리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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