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국의 중대건대(중독된 대한민국을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아이들과 아내가 내게 묻는다. 도대체 왜 그러고 다니냐고 말이다.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관련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라디오나 TV 토론에 아빠가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던 아이들의 반응도 요즘은 영 신통치 않다. 주말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빠를 보고, “아빠가 컴퓨터 중독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한다. 스스로 생각해본다. 여기는 어디이고, 난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나는 병원에서 수많은 중독환자를 진료해 왔다. 그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이게 병원에서 열심히 치료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병원 밖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중독될 만한 것들’이 있고, 이것들의 이용을 조장하는 산업이 있으며, 이에 대해 매우 허용적인 문화적 배경이 있다.

새 법률안 논의는, 개인과 사회에 큰 부담이 되는 다양한 중독을 예방하고 관리하고 치료하는 일에 국가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법안을 ‘게임산업 등 관련 산업에 대한 규제’로 규정하며 왜곡하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참석한 토론회에서는 규제개혁 대상의 하나로 관련 부처에서 게임을 지목한 모양이다. 게임산업 진흥과 문화 콘텐츠 육성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규제과잉으로 인한 피해’ 주장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가 과연 게임 등에 대한 규제가 심한가? 우리나라는 게임 접근성이 최고로 높은 나라다.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고 천지에 최고급 사양의 컴퓨터가 널려 있다. 영유아 15.1%가 매일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15%의 아이들이 매일 두 시간 이상 게임을 하며, 10세 이하 아동의 주간 인터넷 사용시간이 10시간 이상이다. 정상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프랑스에서는 14세 이하 청소년에 대한 휴대전화 광고를 금지한다. EU 내 10개 이상의 나라가 아동에 대한 스마트폰 판매제한을 법제화할 예정이라 한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초중고생들에게 하루에 1~2시간 이하로 스마트 스크린기기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산업 진흥 못지않게 아동, 청소년들의 과도한 디지털미디어 사용으로 인한 피해도 예방하고자 함이다.

주류매출 8조, 사행산업 매출 14조에서 알 수 있듯이, 중독관련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게임업계도 매출 8조 수준에 마케팅비로 4,000억원을 쓴다고 한다. 게임업계는 “게임관련 규제가 심하며, 이로 인해 게임의 창조성과 산업적 가치가 훼손당한다”고 주장하지만, 인터넷게임중독으로 고통받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할 수 있나?

이번 논란을 통해서 적지 않은 고통도 겪었지만, 교훈도 많이 얻었다. 우선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중독 문제를 전문가들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됐다. 의사들이 정말 순수한 뜻으로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섰을 리가 없다는 의혹의 눈초리도 확인했다. 한편으로 억울하지만, 결국 중독 전문가들이 그동안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못해 온 결과라고 여기기로 했다. 전문가들부터 ‘사회화’가 덜 되어 있었고, 국민들에게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일에 소홀했다는 자기반성이다. 한편 희망은 있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신부님, 선생님, 스님, 목사님, 국회의원, 아이들, 동네 어머니들 모두가, 진심으로 이야기하면 공감하고 격려해 주신다. 아직은 부족하고 갈 길이 멀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요즘 규제완화가 화두다. 대통령의 관심도 큰 것 같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와 자격도 없이 국민의 건강한 삶을 규제하고 있는 중독질환”의 퇴치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시급한 규제완화가 아닐까 한다.

이해국 교수(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nplhk@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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