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시국분석(上) 현재의 총파업 국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청년의사 신문 박형욱]

많은 의사들이 집단으로 휴진한 지난 10일 저녁 SBS 뉴스와 KBS 뉴스는 대조적이었다. KBS는 그동안 언론이 보여 준 통상적인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의사들 요구대로 25%를 올리면 7조5,000억원이 듭니다. 그런데 일반 국민보다 월등히 높은 의사 소득에 뭘 얼마나 더해 줘야 하느냐는 반감이 있습니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데 의사협회가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SBS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료로 소득의 5.99%를 냅니다. OECD 국가와 비교하면 독일의 1/3 정도 수준입니다… 1977년 건강보험 출범 당시 우리는 보험료 부담을 외국에 비해 대폭 낮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 건보제도의 저부담, 저보장, 저수가 구조가 고착화됐습니다. 실제로 제왕절개 수술 1건의 보험급여는 우리가 1,769달러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습니다. 결국, 병원들은 박리다매식으로 많은 진료를 하거나 비급여 진료를 늘려 수지를 맞추는 게 일상화됐습니다.’

SBS가 보도한 내용이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다 아는 사실이 공중파의 저녁 메인 뉴스에서 ‘의사의 이기심’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객관적 시선’으로 전달된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한 의사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감격의 글을 남기고 있다. ‘이런 얘길 주요 언론사에서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2년 전만 해도 참 꿈같았던 일이예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의협) 회장님과 현임 집행부의 공이 큽니다.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SBS 뉴스에 감격하다

사실 원격의료와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허용 정책으로 촉발된 논의의 장에서 의협의 입장, 특히 노환규 회장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노환규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고 거기서 대표를 내보내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했다. 그런데 협의가 끝나고 공동기자회견까지 한 뒤에 비대위원장인 노환규 회장이 그 협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협상의 상대방을 우롱하는 행위이고 의협의 사회적인 신뢰를 떨어뜨리고 명분을 크게 잃는 행위다. 명분이 서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일을 명분을 잃으면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의사들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모습을 전혀 문제시 하지 않고 있다. 뭐, 어떠냐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는 소위 상식적(?) 태도를 가진 전임 회장들이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감정이 깔려 있다. 자해를 해서라도,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의사들의 목소리가 공론의 장에 나오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금 같은 ’무데뽀(?)‘ 회장이 아니면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의 목소리를 이만큼이라도 고려해 주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근거 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 바람직한 의사소통 구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이러한 비상식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었는가? 무엇이 의사들에게 합리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불신하게 만든 것인가? 막히면 결국 폭발하는 법이다. 지금 막힌 의사소통 구조를 제대로 이해해 개선하지 않으면 또다시 폭발하게 돼 있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수가를 얼마 인상해 준다고 막힌 의사소통 구조가 뚫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 소위 진보적 지식인, 국회, 언론, 정부의 역학관계 속에서 이를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

비상식이면 어때?

사실 한 가정의 가계를 꾸려나갈 때도 수입과 지출은 균형을 찾아야 한다. 온 국민이 관계되는 건강보험 운영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값비싼 의료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어도 건강보험 지출은 늘어나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수입과 지출을 제대로 맞추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보험료가 낮으면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이 둘 간의 관계를 무시하는 왜곡된 의사소통 구조가 지속돼 왔다.

국민은 건강보험료 인상을 싫어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국민에게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민간의료보험의 엄청난 성장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요컨대 국민에게 돈은 있지만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는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진보적 학자들은 국민을 합리적 방향으로 이끌기보다 국민이 그 이기심을 발현하는 데 기여해 왔다.

소위 진보적 학자들은 의료 부문에서 시장이 남용됐다고 외친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CT, MRI 대수를 외국과 비교하면서 의사의 이기심과 의료 자본의 탐욕이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있다고 전파한다.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부문에서 시장의 과잉이나 의료의 영리화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합당한 재정을 투여해 공적 의료체계를 튼튼히 만들어 놓지 않은 결과다. 국민의 마음에 공적 의료체계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합당한 재정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할 때 시장의 과잉이나 의료의 영리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진보적 학자들도 공공 의료체계의 강화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주된 모순과 종된 모순을 분별해 전달하지 않았다. 이들은 의사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춰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전달해 왔다. 결국 국민은 의사의 이기심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지는 것이고 의사의 비리를 척결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학자들은 건강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의 이기심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국민들의 입맛에 맞게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의 문제와 국민의료비 부담증가에 대해서만 떠든다. 낮은 보험료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왜곡된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은 빼버리고 의사들의 이기심을 공격하는 데 몰두한다. 언론은 의사들의 비리를 척결하면 건강보험이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국민의 인식을 강화한다. 예외가 없다.

한편 정치권력은 표를 얻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겠다는 달콤한 말만 해댄다. 이는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의 무상의료 정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여당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방안이 나온 것이다. 표를 향한 여야의 경쟁 속에서 무리한 보장성 확대 정책이 나온다. 그래 놓고서 정치권력은 이에 합당한 보험료 인상 정책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그것을 떠드는 순간 표가 떨어질 것을 의식한다. 선심만 있을 뿐 책임이 없다.

의사를 때린다, 예외가 없다

정부 안의 역학관계에서 왜곡된 현상은 강화된다. 기획재정부는 일반재정이 보건 분야에 투여되는 것을 극도로 반대한다. 보장성 확대 정책에서 합당한 보험료 인상이 예정돼 있다면 기획재정부의 태도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앞뒤가 맞지 않는 보장성 확대 정책이 진행된다면 오히려 일정 부분 일반재정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건강보험료 수입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라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힘없는 보건복지부다. 보건복지부는 한정된 보험료 수입을 갖고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보장성을 확대하는 묘수를 부려야 한다. 결국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의료계를 쥐어짜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2006년 급여화된 입원환자의 식대를 지금까지 동결하는 야만적인 정책이 버젓이 시행된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오로지 의사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전달된다. 왜곡된 구조를 만든 것은 정치권력이고 그것을 집행한 것은 보건복지부인데 이제는 적반하장격으로 그 결과만을 갖고 의사들만 나쁜 놈으로 만든다. 보건복지부는 저보험료의 문제를 국민과 언론에 알리는 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구조 속에서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 수많은 형식적 위원회가 있을 뿐이다. 아랫돌 빼어 윗돌 놓기, 파이 안에서 나눠 먹기, 의료계 편 가르기로 나타난다. 이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렸다. 건강보험 제도는 겉으로 발전해 왔으나 속으로 곪고 곪고 또 곪아왔다. 이제는 어떤 조그마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해도 전체 의료계가 요동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의료 영리화, 정부가 초래했다

여전히 진보적 학자들은 시장의 남용과 의료의 영리화가 문제라고 떠들어댄다. 정치권력은 보장성 확대라는 달콤한 얘기만 한다. 보건복지부는 주어진 틀에서 집사 노릇만 열심히 하고 폭탄 돌리기만 한다. 보건복지부 공무원 입장에서는 특정 정책을 평생 맡는 것도 아니다. 길어야 몇 년 고생하면 특정 정책 부서를 떠나는 법이다.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건강보험의 장기적인 전망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언론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의사의 이기심을 비난하고 비리 캐기에 열중한다. 아무도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의사소통 구조와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게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자 의사소통 구조다. 물론 자신들의 얘기를 합리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의사들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이 불합리한 구조의 책임을 전적으로 의사들에게 지울 수는 없다. 이제는 합리적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보험의 구조적 문제에서 주된 모순과 종된 모순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저보험료에서 초래되는 저수가, 저보장성 정책의 인과관계를 건강보험의 주된 모순으로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합리적 의사소통이 절실하다. 그것이 올바른 학자의 역할이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것이 보건복지부의 역할이다. 합리적 의사소통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의사들은 어떤 짓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히게 돼 있다. 그리고 그것은 폭발하게 돼 있다. 현재의 의사 집단은, 작은 불씨만 당겨지면 언제 어디서든 폭발하게 돼 있는 화약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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