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디애나대학 칼 브릭스(Carl M. Briggs) 교수

[청년의사 신문 박기택] 국내 의료기기 물류 유통시스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의료기기, 특히 치료재료(실, 주사바늘 등)와 같은 소모품의 경우 의약품과는 달리 의료기기업체-유통대리점-간납(구매대행)업체-의사-병원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유통되고 있는데, 이를 바꾸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

의료기기 관련 유통은 의약품과 달리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규모가 영세한 업체들이 많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영업사원이 의사에게 제품 홍보도 하고, 구매팀에 가서 물류도 나르고, 가격도 흥정하는 모습이나 ‘가납’이란 이름으로 일단 의료기관에 제품들을 쌓아두고 쓰는 상황이 단적인 예다. 문제는 이런 복잡하고 구태의연한 유통과정이 병원 등 의료기관의 비용 증가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

이를 바꾸겠다고 쿡메디칼코리아가 나섰다. 한국 진출 30년 만인 올해 초 총판대리점 판매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쿡메디칼은 HBS(Healthcare Business Solution)부서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영업사원은 ‘임상’ 고객(의사, 병원 등)에게 제품과 학술 정보를, HBS에선 ‘상업’ 고객인 구매, 관리팀 또는 간납업체들과 제품 공급 관련한 업무를 전담케 하는 것이다. 제약산업 등 다른 분야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의료기기업계에선 이 자체가 새로운 시도다.

쿡메디칼은 이러한 시도를 의료기관들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데, 최근 그 일환으로 미국 헬스케어 유통공급 전문가인 인디애나대학 칼 브릭스(Carl M. Briggs) 교수를 초청해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에 브릭스 교수를 만나 헬스케어 분야, 의료기기 관련 유통 시스템의 문제와 개선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 의료기관 관계자들에게 전달코자 한 메시지는.

헬스케어 분야의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SCM)는 어떻게, 어떤 형태로 이뤄져야 하고, 도전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 헬스케어 유통공급이 다른 분야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지.

일단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다. 자동차 등의 산업과 달리 헬스케어 분야의 공급망은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 각 분야의 의사들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임은 알겠다. 하지만 이들 의료기관 또한 결정라인은 일원화돼 있다. 즉, 근본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다른 산업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의료기관에서 (제품 구매 등의) 의사 결정을 누가하고, 그 라인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컴퓨터나 전화기와 달리 헬스케어 분야는 그 결정 과정에 의사, 환자, 심지어 정부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복잡하다고 말한 것이다. 복잡하다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과 같다.

- 미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유통을 통합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윤을 높이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헬스케어 분야에선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것과 헬스케어 분야 의료기기 등의 공급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만큼 헬스케어 분야 유통 관련 토탈 관리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통 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국에선 헬스케어 다른 산업군에서도 공급망 개선을 위한 노력이 수년간 이뤄져 왔다. 헬스케어 또한 임상적 혁신에 유통의 변화를 접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그렇고 전세계적으로 헬스케어 분야가 다른 산업보다 유통 관련 혁신이 뒤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때문에 복잡한 유통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 어떻게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말인가.

협업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뺄 건 빼고, 쳐낼 부분은 쳐내야 하는데, 이를 일괄적으로 어느 부분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각 국가, 지역마다 상황이 제각각이다. 다만, 한발 물러나서 유통 과정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또한 이 때 ‘환자’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 너무 모호한 설명이다. 좀 더 구체적 설명을 부탁드린다.

예를 들면, 병원 구매부에선 비용절감 측면을 고려해 제품을 선택코자 하지만, 그 권한은 크지 않다. 반면 의사들은 비슷한 품질이라도 각각의 성향에 따라 여러 제품을 모두 구매해 사용한다(한국에서 업체가 ‘가납’ 형태로 병원에 미리 제품을 공급하고, 의사가 사용한 양에 따라 비용을 후불로 지불하는 등의 모습도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비효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협업과 투명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투명한 유통과정 하에 행정적인 요인과 임상적 요인이 함께 어우러져 최상이 선택이 만들어져야 한다.

일례로 클리블랜드클리닉에선 수술할 때 사용하는 실을 임상의들에게 선택하지 않게 해하고 그 가짓수를 줄여 사용토록 했더니 몇십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프로세스의 혁신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오는지 보여준 단적인 예다. 한국 헬스케어산업에서도 유통과정의 혁신을 통해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변화에 대한 반발도 있었을 것 같다.

당연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헬스케어 분야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당연히 미국 내에서도 의사 등의 반발이 있었다. 때문에 단순하게 싼 제품을 구매하려는 목적이 아닌, 임상의들의 환자에 대한 고려가 동반된 투명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각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 클리블랜드클리닉의 경우엔 어땠나.

미국에서는 변화의 주체가 대학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이었다. 클리블랜드의 성공사례도 병원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병원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조직원들 간 협업이 더 쉬웠을 것이다. 사실, 쿡메디컬과 같이 기업이 주체가 돼 유통공급의 변화를 꾀하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고, 결과가 좋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헬스케어분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도전 과제는.

헬스케어 분야 유통 과정의 혁신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헬스케어 공급체계가 다른 산업군과 달리 ‘전인적’ 요소가 크게 작용해 변화가 쉽지 않다. 도전과제가 많다는 점은 개선할 부분도 많다는 말이고, 또 성공 기회도 많다는 말이다. 일차적으로는 헬스케어 시스템 복잡성과 변화에 따른 저항을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지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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