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두 교수의 Palliative Care


[청년의사 신문 장영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위해 한번쯤 사춘기라는 정서적 변화의 시기를 거친다. 철학적 사고의 기틀이 싹트는 시간이기도 하니 누구나 한번쯤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가?”, “하루하루 죽어 가는가?” 등에 대한 의문을 가져 봄 직 하다. 어찌 보면 말장난 같기도 한 이상한 질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똑같던 시간이 암 진단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는 시간으로 카운트다운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렇다면 사형수는 어떤 마음일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사형수에게 하루하루 죽어간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사형수는 영원히 미결수이고, 형 집행이 되는 순간을 법무부장관만이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사형수에게는 형 집행 시기에 대해 통보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죽음의 마지막 순간을 아는 것 자체가 죽음에 대한 무한한 공포와 정신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형수라 할지라도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배려와 예의를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매일 출퇴근 할 때마다 30분 넘게 운전하다 보면 가끔씩은 정말 아찔할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은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런 사망에 대한 위험들은 사형수가 매일 겪는 위험에 비해 과연 안전한가? 나는 오늘도 살아가는지 죽어가는지 알 수 없다. 당장 내일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는다. “나에겐 그런 일 없을 거야”라고. 그래서 마음이 편한 것 같다. 그런데 암환자와 가족들 대부분은 암 진단을 받는 순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이 “얼마나 더 살수 있죠?” 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죽음이 예고된 시간을 아는 순간 많이 불행해 지는 것 같다. 그 비밀의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그래서 사형수에게 조차도 인간적인 최소한의 배려로 여겨지는 그런 순간, 그렇게 중요한 시간에 대해 진료실에서 환자와 이야기 해야 하는 의사는 얼마나 진지해야 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한번쯤 어떻게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아쉽게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대 학습과정이나 임상수련 중에 배우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마치 내가 남들 다 중고등학생쯤 겪어야 했던 사춘기를, 대학에 들어가서 시작해 대학생활 2~3년을 방황하고, 힘들어 했던 것처럼 조금 일찍 경험했다면 어쩌면 조금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많은 분들이 전문의과정을 마치고 이런 문제에 실제 마주치게 되면 겪는 사춘기처럼 말이다. 다음에는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실제 진료실에서는 어떻게 풀어가는지,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방식에 대해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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