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


[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최근 몇 년간 대학 등록금 인하 요구가 들끓었다. 경기 좋던 시절에는 대학만 나오면 번듯한 직장 마련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런 일은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소위 SKY대학을 나와도 대기업 취업이 어렵다. 그럼에도 대학등록금은 매년 물가상승률 2배 이상 올랐다.

등록금 인하 요구는 여론의 지지를 받아 결국 대부분 대학들은 등록금 소폭 인하 또는 동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등록금 인하 요구가 한참일 때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는 근거가 된 것 중 하나가 ‘적립금’이었다. 사립학교는 연구, 건축, 장학, 퇴직, 기타 용도로 매년 수익의 100% 이내에서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쌓을 수 있고 이것은 전액 손비로 인정돼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등록금을 올리지 않으면 대학 경영이 어렵고 투자가 불가능해 국제경쟁력을 올릴 수 없다는 사립대학의 주장은 각 학교마다 쌓인 수천억의 적립금과 이 돈을 건물을 지어 법인 자산을 늘리는 데 주로 쓰인다는 반발에 묻혔다. 대학 경쟁력을 올리고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는 당연하다. 그러나 2011년 을 기준으로 적립금의 29%는 용도가 불투명한 기타항목이었다. 법인의 자산 증식이 목적이라는 비판의 근거이다.

최근 수년간 등록금을 인하 또는 동결하고 있지만 사립학교들의 적립금 규모는 2007년 8조800억 원에서 4년 만에 11조1500억 원까지 늘었다. 특히 재정상황이 나쁘다는 이유로 등록금을 상대적으로 덜 인하한 수도권 대학의 적립금이 더 많이 늘었다. 투자를 덜 했거나 등록금을 더 내릴 충분한 여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서울대학교 병원장과 노조 간에 병원 수입에 대한 서로 다른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서울대학교 병원장은 서울대학교병원이 올해 127억 적자를 냈기 때문에 비상경영제제로 들어간다고 선언하고 허리띠를 조이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병원 노조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고려하면 오히려 108억 원 흑자이며 적자라는 주장은 경영진의 꼼수라고 비판하고 적자라면 예정돼 있는 심뇌혈관병원, 융복합연구병원의 착공을 중단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주요 상급종합병들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조사한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학교병원은 337억이 늘어 2,463억 원, 아산병원을 운영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579억 원이 는 4,411억 원, 연세의료원은 444억 원이 줄었지만 3,679억 원, 서울삼성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1억 원이 늘어 334억 원를 적립하고 있다.

수년째 서울 소위 ‘빅5’병원들은 전체 44개 상급종합병원에 지급되는 국민건강보험금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병원 경영이 어렵다고 하고 특히 지금과 같이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이 급여로 전환될 상황에서 이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의료계는 빅5가 힘들다면 다른 병원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는 논리로 의료수가 인상을 주장하고 3대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하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의해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공공의료법인은 수익 100%를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적립할 수 있고 수도권과밀억제권역, 광역시를 제외한 지역 법인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80%를 적립할 수 있다. 특정 병원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중소병원 경연난이 커지는 현실과 의원이 받는 건강보험급여금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과연 대학병원 등에 이런 혜택을 계속 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볼 문제이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고려하면 대학병원 등은 수익에 대한 세금을 전혀 내지 않고, 일부 병원은 20%에 대한 최고세율 22%의 법인세를 내고, 의원은 최고 세율 38%의 개인소득세를 내야 한다.

지금처럼 병원마다 적립금 수천억 원을 쌓아 놓고 매년 수백억을 쌓으면서 경영난을 주장한다면 소위 ‘반값등록금’ 사태 같은 의료비 인하 압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는 등록금으로 건물을 짓는 대학이나 병동을 늘리는 대학병원이 다를 것 없다.

만약 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이익의 손금산입이 가능한 고유목적사업적립금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면 적립금의 용도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고 의료기관의 설립 주체에 따른 차별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의원이라고 장기투자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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