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


[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정부가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4대 중증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 그리고 희귀난치성 질환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다른 중증질환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예를 들어보자.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수 이문세는 갑상샘암을 앓았다. 가수 겸 배우 엄정화와 개그우먼 안영미씨도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 이미 갑상샘암은 2009년부터 우리나라 암발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갑상샘암으로 사망한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국립암센터도 갑상샘암의 5년 생존율을 99.8%로 보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이기 때문에 4대 중증질환에 포함돼 많은 혜택을 받게 됐다.

반면 이런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는 중증질환도 있다. 화상이 그 예다. 몇 년 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지선씨는 스물세 살의 나이에 음주운전 차량과의 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다. 매일 밤 고통에서 울부짖었다는 그녀의 증언을 들어보면 ‘화상’도 4대 중증질환처럼 보장을 확대해줘야 한다.

4대 중증질환에 포함되지 않는 사례로 중증외상도 있다. 중증외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 3만명 정도다. 숫자로 보면 국내 갑상샘암 환자와 비슷한 수다. 외상 전문가들은 중증외상 사망자의 1/3은 적절한 치료만 받는다면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수가’ 등의 문제로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받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B형 간염 보균자 중 간경변증을 진단받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말기 간경변의 경우 간이식을 받아야만 하는 중증질환이다. 보통 간이식을 받는데 4,000~5,0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렇게 많은 중증질환이 있는데도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다. 2011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진료비가 연간 500만원 이상 발생한 상위 50개 질환 중 4대 중증질환 진료비가 61%를 차지하고 또 그 수가 159만명에 이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확인해보니 2011년 사망통계를 보면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47.5%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고액진료비 환자의 39%와 전체 사망자의 52.5%는 4대 중증질환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우선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여러 환자단체의 장들과 함께 보건복지부 팀장을 만나 들어본 이유는 이랬다. 4대 중증질환은 첨단 검사와 고도의 수술 및 고가의 항암제 등을 사용, 막대한 의료비를 초래해 가정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질환의 보장성을 다 높이고 싶지만 건강보험의 한정된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대통령의 공약이였기 때문이다’라고 솔직한 고백을 했다면 인간적으로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4대 중증질환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성이 높았다. 평균적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3%라고 하지만 4대 중증질환은 89.8%에 이른다. 앞으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계획이 시행 되면 95.7%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나머지 화상과 중증외상, 그리고 간경변과 같은 질병은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복지부는 앞으로 건강보험료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하니, 혹시라도 나머지 중증질환들의 보장성이 후퇴하진 않을까 걱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복지부에 대해 쓴 소리 한마디 더해보자. 지난 주 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을 ‘찬성’하는 환자단체들을 대상으로만 간담회를 가졌다. 나는 운좋게 그 자리에 꼈을 뿐이다.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단체만 휘둘러서야 어떻게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럴 시간에 복지부 공무원들이 만나야하는 것은 현장의 환자들이다. 실제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들 병원에 가서 일주일씩만 파견을 나가보라. 그러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가 얼마나 우매한 정책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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