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기생충 펀 팩트


[청년의사 신문 정준호]

말라리아 관련된 책을 번역하는데 G6PD 결핍증(포도당­6­인산탈수소효소결핍증)과 잠두중독증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잠두중독증’ 하니까 문득 피타고라스에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피타고라스는 특이하게 몇몇 음식들을 금기시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콩이다. 이런 이유로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전부 콩을 먹지 않았는데, 생식기를 닮아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피타고라스가 콩과 사람의 기원을 동일시 여겨 금기시 했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G6PD 결핍증이다. 주로 지중해 인구에서 발견되는 유전질환인데 적혈구 소화 효소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 용혈증과 빈혈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려면 특정 단백질과 접촉해야 하는데 이 단백질이 콩에 들어있다. 즉 피타고라스 본인이 이 병에 걸려 콩을 먹으면 심한 부작용을 일으켜 콩을 금기시 했다는 얘기다.

피타고라스의 죽음도 콩과 연관이 있다. 피타고라스가 죽은 여러 가지 설에는 모두 콩이 등장한다. 하나는 적에게 쫓겨 도망치다 콩밭을 가로질러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얘기에서는 피타고라스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콩밭에 발을 올릴 수는 없다’며 멈춰서 잡혀 죽었다고 한다. 다른 얘기에서는 콩밭을 가로질러 도망치던 피타고라스가 갑자기 밭 한 가운데에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잠두중독증(favism)은 G6PD 결핍증 환자가 특정 콩 종류를 먹었을 때 나타나는데, 심한 적혈구 용해로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다. 콩 뿐만 아니라 클로로퀸 같은 항말라리아제를 먹어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반응이 심한 사람들은 꽃가루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적혈구 용해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피타고라스의 경우 증상이 심각해 콩밭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사망했다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이런 가정들을 합쳐보면 피타고라스가 콩을 왜 금기시 할 정도로 싫어했는지 짐작이 간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항말라리아제가 G6PD결핍증 환자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본래 G6PD 결핍증이 유전질환으로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은 말라리아 감염에 어느 정도 저항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이나 지중해빈혈증처럼 인간과 말라리아는 언제나 함께 해 와서 G6PD같은 선천적 면역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말라리아 유행 지역에서는 콩보다 말라리아가 위험해 유전적 선택이 일어난 셈이다. 말라리아 때문에 남아있는 유전질환이 항말라리아약 때문에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모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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