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여전히 ‘기피 대상’…MD 비율 줄고 non MD 비율 증가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정부는 지난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2030년까지 국내 토종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 배출을 위해 20~30대 신진의과학자를 선발해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정책이 추진됐었다. 지난 2001년 수립된 ‘기초의과학육성종합계획’이 그것이다. 기초의과학육성종합계획의 핵심은 의대를 졸업한 후 임상이 아닌 기초의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본지가 전국 39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의대인증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서남의대와 유예된 관동의대는 제외)에 소속된 기초의학 전임교원(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기초의학은 여전히 ‘기피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MD(Doctor of Medicine, 의사) 비율이 줄고 non MD(비의사) 비율이 늘고 있었다.

non MD로 대체되는 기초의학교실

본지는 전국 39개 의대를 대상으로 기초의학협의회 소속 8개 기초의학(기생충학, 미생물학, 병리학,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 예방의학, 해부학) 전임교원(이하 기초의학 교수) 현황을 조사했다. 의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 기초의학 교원 명단을 바탕으로 각 의대에 직접 전화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으며, 그 결과를 지난 2004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가 발간한 의대교육현황 자료와 비교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4월 현재 8개 교실 기초의학 교수는 총 1,287명이었으며 이는 10년 전인 2004년(1,200명)보다 6.8%(87명) 증가한 수치다. 증가한 교원의 63% 이상은 non MD로, 2004년(340명)보다 55명(13.9%)이나 증가했다. 반면 MD 출신 교수는 2004년 860명에서 2013년 892명으로 3.2%(32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전체 교원 중 MD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71.7%에서 2013년 69.3%로 줄었다. 전문의 과정이 있는 병리학과 예방의학을 제외하면 MD 비율은 50%대로 떨어진다. 2004년 병리학과 예방의학을 제외한 6개 기초의학교실 교수는 780명으로 이 중 60.5%가 MD였지만 2013년에는 56.1%(475명)로 감소했다(병리학과 예방의학은 지난 10년 동안 MD 비율이 최대 2%p 늘었다).

교실별로는 기생충학의 MD 비율이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이 줄었다. 2004년에는 전체 기생충학 교수의 69.8%가 MD였지만 2013년에는 58.0%로 그 비율이 11.8%p나 감소했다. 다음은 미생물학교실로, 지난 2004년 160명이던 교수는 2013년 153명으로 오히려 줄었으며 이는 MD 감소의 영향이 컸다. 2004년 103명이던 MD 출신 미생물학 교수는 2013년 86명으로 19.8%나 감소한 반면 non MD는 57명에서 67명으로 14.9%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전체 교수 중 MD가 차지하는 비율도 64.4%에서 56.2%로 8.2%p 감소했다.

MD 비율이 가장 낮은 교실은 생화학이었다. 2004년 생화학 교수의 52.1%였던 MD는 2013년 50.6%로 더 줄었다.

서울의대 1위…의대별 편차 커

각 의대마다 확보하고 있는 기초의학 교원 수도 편차가 커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기초의학 교수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의대로 전임교원만 76명이었으며, 지난 2004년(63명)보다 13명이나 늘었다. 다음은 연세의대로 71명이었으며, 가톨릭의대 55명, 고려의대 51명, 인제의대 50명, 전남의대 43명 등의 순이었다.

기초의학 교수 중 MD 비율이 가장 높은 의대는 전남의대로 93.0%가 MD였으며 이화여대 의전원 90.0%, 계명의대 88.5%, 고려의대 88.2% 등도 MD 비율이 높았다. MD 비율이 높은 다른 의대의 경우 전체 교수 수는 중하위권에 속한 반면 전남의대와 고려의대는 전체 교수 수도 상위권을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설립된 지 20년이 안된 신생 의대의 경우 대부분 전체 교원 수나 MD 비율이 모두 중하위권에 속해 있었다. 39개 의대 중 신생 의대로 분류되는 성균관의대, 을지의대, 건양의대, CHA의전원, 강원대 의전원, 가천대 의전원, 제주대 의전원 중 성균관의대를 제외한 나머지 6곳은 기초의학 교수 수가 중하위권이었다. MD 비율에서도 39개 의대 중 16위를 차지한 을지의대를 제외한 나머지 6곳은 중하위를 면치 못했으며 그 비율이 30%인 곳도 있었다.

문제는 MD는커녕 기초의학을 가르칠 수 있는 전임교수가 부족해 기본 기준에도 미달하는 의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의학교육 인증평가 기준에 따르면 모든 의대는 세계의학교육협회(WFME)가 권고하는 기초의학 교육을 위해 13개 분야에 최소 1명 이상씩, 총 25명의 기초의학 전임 교수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기초의학 13개 분야에는 기존 8개 이외에 면역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생물물리학, 세포생물학 등이 포함된다.

의평원은 이를 기초의학 교육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준이라고 했다. 이보다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13개 기초의학 분야 중 90% 이상에서 교육경력 10년 이상인 전임 교수가 1명 이상 있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의대들은 의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본 기준이 아니라 우수 기준에 맞춰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몇몇 의대는 기본 기준에도 미달하고 있었다. 4월 현재 전체 기초의학 전임교수가 25명도 안 되는 의대는 원광의대, 강원의전원, 대구가톨릭의대, 인하대 의전원, 단국의대, 제주대 의전원, 동국의대 등 총 7곳이었다. 이들은 전체 기초의학 교수 중 MD 비율도 39개 의대 중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교육 현장에서도 설 자리 좁아져

기초의학 교수가 부족한 것보다 의대 내에서 기초의학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정부가 인턴제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의대들은 저마다 임상실습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임상실습 기간을 늘리기 위해 기초의학 교육 시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초의학교육이 부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선대 의전원 기근홍 원장은 “기초의학교육의 부실화가 가장 우려된다”며 “지금도 기초의학이 위축되고 있는데 임상실습 중심으로 교육이 강화되면 더 심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초의학협의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의대 기초의학 백서’를 발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초의학협의회는 “의학교육을 평가하는 의사국가시험에서는 기초의학의 교육 내용이 전혀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며 “의대의 졸업목표가 환자의 진료 능력 위주로 설정되고 서브인턴제가 성급하게 도입되는 등 의대의 교육이 임상의학 위주로 재편돼 가면서 우리나라 의대에서 기초의학 교육은 이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의대들이 기초의학, 임상의학, 의료인문인문학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영향인지 기초의학교실별 단독으로 개설한 강의가 하나도 없는 의대들도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기초의학 백서에 따르면 기초의학협의회의 설문조사에 응한 총 238개 기초의학교실 중 29.0%가 단독 개설 강의가 하나도 없었다. 한 과목만 개설한 교실이 39.8%였으며 두 과목 이상 개설한 교실은 33.2%였다. 생리학과 미생물학, 기생충학교실의 40% 정도가 단독 개설 강의가 없는 반면 예방의학과 해부학교실은 각각 80%, 60%에서 2개 이상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었다.

기초의학협의회 안영수 회장은 “의대나 교수에 대한 평가 지표에서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연구도 중요하지만 대학에서는 교육도 중요한 부분인데 교수 개개인의 능력을 연구 중심으로 평가하다보니 교육에 소홀해지는 면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말뿐인 기초의과학자 육성

그렇다고 기초의학 연구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기초의학 연구비는 여전히 적고 정부 지원도 부족하다.

기초의학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는 꾸준히 증가해 2009년 37조9,285억원에서 2010년엔 43조8,548억원으로 40조원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인구 1인당 연구개발비는 2010년 89만원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중국과 영국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며 정부·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도 28.0%로 프랑스 41.2%, 영국 36.8%, 미국 32.7%보다 낮다. 특히 국가과학기술 표준분류체계에 따라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비를 분류해 보면 총 연구개발비의 3.84%에 불과하다.

기초의학협의회는 “미국의 경우 보건복지 예산이 전체 연구개발비의 30% 정도를 점해 총액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할당 비율에서도 우리나라와는 현저한 격차가 있다”며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 연구개발 수준이 중하위에 그치고 있는 점은 연구개발비 수준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기준 기초의학교실이 받은 총 교내 연구비는 47억3,600만원, 교외 연구비는 1,576억1,100만원이었다. 교외 연구비 중 1,503억8,700만원이 교육부·복지부·지식경제부 등에서 지원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생명과학기술(BT) 분야에 3조4,591억원을 투자한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지원이 열악하다는 게 기초의학협의회의 지적이다.

교수 외 기초의학 연구 인력은 강사 64명, 박사후연구원 177명, 조교 489명, 연구원 516명, 석사과정 대학원생 614명, 박사과정 대학원생 718명이며 이들 중 MD는 207명(8.0%)이다.

정부는 지난 2001년 기초의과학 전공 인력 양성 확대 등 5개 세부과제가 담긴 ‘기초의과학육성종합계획’을 마련했지만 이 중 실행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 기초의과학 전공자들이 병역을 대체할 수 있는 기초의과학연구센터(MRC)가 유일하다는 게 기초의학협의회 측의 지적이다.

기초의학협의회는 “우리나라는 기초의과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생명과학육성 정책이 주로 자연과학 분야를 위주로 지원되고 있는 반면 기초의과학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며 “이런 정책적 차별의 중심에는 연구비를 담당하는 부처들 간의 모순된 역할 분담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순수 기초과학(자연과학) 분야를, 복지부는 임상의학 중심의 응용연구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면서 기초의과학은 완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인터뷰]기초의학협의회 안영수 회장

"기초 없이 임상 발전 없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 절실"

기초의학협의회가 ‘의대 기초의학 백서’를 이달 중 발간할 예정이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위기라고 했던 기초의학의 발전을 이끌려면 무엇보다 기초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기초의학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안영수 연세의대 교수(약리학)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기초의학 교수가 MD에서 non MD로 대체되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Q. 기초의학 분야에 MD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미국이 왜 연구를 의대 중심으로 진행하겠나. 인체를 알고 병을 알아야 정확한 타깃을 정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경우 타깃 선정이나 방법론 등에서 의사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생명공학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의대를 졸업한 MD가 연구 부분에서도 강점을 가질 수 있다.

Q. 하지만 MD 출신이 줄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 예전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공학이나 물리학, 화학 등을 많이 전공했지만 요즘은 의대로 많이 온다. 이들이 의대로 오는 건 연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정적인 수입 때문이다. IMF 등 경제위기를 여러 차례 겪고 난 후 이런 인식은 더 강해졌다. 의대를 졸업한 후 연구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다. 때문에 의대를 다니는 동안 교육 등을 통해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

Q. 의전원 체제를 도입한 이유 중 하나가 기초의과학자 양성이었다.

- 그 부분은 검증이 안 된 이론에 불과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기초의학 분야를 하면 서른 살이 넘는다. 의전원의 경우 그 기간이 2년 더 길어지는 셈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기초의학을 하겠다고 지원하겠나.

Q. 그렇다면 기초의과학자 양성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 의과학자(physician scientist)가 되려면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최소 7년 정도 걸린다.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기초의학을 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연세의대의 경우 전문의를 취득한 후 기초의학 박사 과정을 하겠다는 학생에 대해 대학원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월급도 펠로우에 준해서 지급한다. 기초의과학연구센터(MRC)를 통한 병역특례도 받을 수 있다. 유인책이 필요하다. 임상의학에 비해 교수 자리도, 월급도 적은 게 기초의학이다. 사명감 하나로 기초의학을 하기에는 너무 열악하다. 결국 정부가 충분히 지원해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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