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경북대병원 재활의학과)


[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어딜 가나 주변이 궁금했다. 일이 생기면 왜 이럴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고등학교 첫 시험은 점수가 낮은데 고 3때 성적이 좋은 식이죠, 교수 되고 나서도 10년 쯤 지나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더군요, 하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자마자 다리가 마비된 뇌졸중 환자를 위한 재활훈련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재활의학에서 보행치료는 ‘빛이 나지 않는’ 일이지만 마비된 지 1년이 넘은 경우도 재활이 가능하다. 뇌졸중 환자는 독자 보행만 가능해도 생활이 바뀐다. 그렇게 9년, 국내 특허와 미국 특허를 받았다. 개발한 훈련장치를 이용한 임상시험 결과를 SCI 논문에 게재하기도 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로부터 보건신기술(NET-New Excellent Technology) 인증을 받았다. 착실하게 단계를 밟은 셈이다.

경북대병원 재활의학과 이양수 교수의 얘기다. NET 인증을 받으면 3년간 NET마크 사용, 기술지도 및 국내외 품질인증 획득 지원, 기술개발자금(기술신용보증, 발명장려 보조금 등) 지원, 국가기관이나 공기업의 신기술 이용제품 우선 구매혜택, 해외기술정보 알선 등 혜택이 있다. 3년간은 국가에서 밀어줄 테니 잘 해보라는 의미다.

- 이번 인증이 어떤 의미인지.

30년 전에는 특허로도 충분했지만 요즘은 워낙 흔하다. 중소기업에서 만든 제품은 아무래도 마케팅에 한계가 있는데 보건신기술 인증은 특허보다는 인지도 면에서 도움이 된다. 나아가서는 수가도 받게 되면 좋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이 장치를 써도 환자에게 추가로 돈을 못 받는다. 1,700만원인데 외국 제품도 비슷하다.

문제는 외국 제품도 잘 안 팔린다는 점이다, 하하. 의사들은 낯선 의료기기가 좋다고 해도 바로 사지 않는다. 결국은 매출이 날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 시간은 좀 걸릴 거다. 의료기기 개발에는 시간도 필요하고 인허가 과정도 복잡하다. 여유 자본을 갖고 길게 가야 하는데 중소기업이 5년 뒤 수익을 보고 투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NET까지 받았으니 좀 낫지 않을까 기대한다.

- 아이디어를 내고 준비를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첫 특허가 2006년인데 특허 받는 데는 2년 정도 걸린다. 식약청에 등록된 의료기기가 두 개인데 하나는 중소기업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는 쌈짓돈을 털어서 만들었다. 이번에 NET인증을 받은 기기는 뇌졸중 등 하지마비 환자가 수평이동과 수직이동을 함께 측정하고 이를 이용해 게임을 하면서 운동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체중과 관절 각도를 이용한 슬라이딩 재활훈련 장치다.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만들고 있어서 내 돈은 안 들어가는데 가내 수공업 수준이라 만들 때마다 디자인이며 아이디어가 달라진다. 그래도 효과는 좋은데. 수요가 많으면 더 싸게 팔 수 있는데 안타깝다. 우리 병원과 대구 지역 병원 한 군데서 쓰고 있다. 수익 70%를 갖게 되는데 학교에서 대준 특허 비용 3,000여만 원을 갚을 때까지는 내게는 한 푼도 안 돌아온다. 하하. 작년에 500만 원 정도 갚았다.

- 제품 특성을 보면 환자가 능동적으로 수직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마비된 다리를 주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고 했는데 재활의료기기면 당연히 가능해야하는 것 아닌가.

다들 저 마비된 다리를 쓰게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정상 다리를 고정시켜서 훈련하다가 넘어지거나 장딴지 근육이 파열된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시도는 많았는데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방법이 환자에게 부담을 덜 준다는 거다.

고관절 굴절이 덜하고 바퀴와 레일을 이용해서 다리를 전혀 못 쓰는 환자라도 더 나은 다리로 운동하면 마비된 다리는 수동적으로 폈다 구부렸다 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 NET 인증을 받은 기기 같은 경우는 기울기 센서를 내장해서 환자 상태를 입력하면 움직임을 감지하기 때문에 환자가 슬관절 각도를 조절해서 정확하게 수평수직운동을 하면 화면에 있는 딸기를 딸 수 있다. 몇 점까지 하자는 목표를 정하면 환자가 스스로 게임에 몰두하게 된다. 간단하고 다 아는 얘기인데 아무도 실천을 안 한거다. 불편하거나 효율이 낮아도 있는거라도 하자는 식이었겠지.

- 보행치료가 빛이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혼자 걷도록 하는 것이 재활의 기본 아닌가.

물론 못 걷는 사람이 걷게 되면 엄청난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지부에서 돈을 많이 주지는 않는다. 내가 보행재활에 뛰어나다고 소문나는 바람에 환자가 몰렸다 치자. 치료사를 50명 쯤 뽑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행훈련을 하면 병원은 적자가 난다. 경영 측면에서는 굉장히 안 좋은 시스템이다, 하하.

대학병원은 인건비가 높은 편이니까. 재활의학과가 수가가 낮은데 재활치료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만원, 1년에 300일 하면 3,000만 원이 되니까 수가를 낮게 잡는 거다. 지금까지는 의료가 생명을 연장하는 데 포커스를 뒀지만 이제는 90, 100살까지 사는 것을 걱정하는 시대다. 이제는 생명도 연장하고 기능도 연장해야 한다. 살아도 못 걷고 누워있으면 무슨 의미인가. 수명은 늘고 기능은 떨어진다는 것은 대부분이 장애인의 삶을 겪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 의료가 수명을 늘이는 것 뿐 아니라 기능을 증가시켜야 하는 시점이 왔다.

- 비용·시간·창의력까지 소모하는 일인데 이렇게 발명을 놓지 않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남들에게도 도움되는 의미있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데 나는 환자 보는 일이 아니라 이 일이 제일 쉽다, 하하. (재활의학과 의사는 환자와 인간적인 유대가 특히 많아야 하는 직업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환자를 보는 게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환자가 많이 몰리고 그런 것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환자를 많이 봐서 병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고, 하하. 제가 돈은 못 벌더라도 보행훈련에서 이 기계가 수가도 받고 효과도 인정 받으면 병원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글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사진 김형진 기자 kimc@docdocdoc.co.kr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