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의료관광 세일즈! 개 진료비보다 싸요. 한국으로 오세요.”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페이스북에 올린 만평에 들어간 문구다. 만평에는 각국의 의료보험 수가를 비교해서 담았는데 위내시경의 경우 한국 2만8,000원, 대만 5만7,000원, 미국 41만5,000원이다. 이 만평과 의협 노환규 회장의 관련 글 때문에 수의사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비에 대한 의료계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반면 의료비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너무 비싸다’였다. 지난 8월 국립암센터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암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했다. 암 발병 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30.7%가 ‘치료비 부담‘을 꼽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 절반인 16.1%였고 가정 붕괴를 걱정한 사람은 9.3%였다.

우리나라의 의료비가 낮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 의료비 부담도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독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 걸렸을 때 치료비를 가장 크게 걱정할까. 국립암센터가 정기적으로 같은 조사를 하지만 매년 치료비 걱정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공짜를 더 좋아해서 그런가. 우라나라 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적당히 적응하고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자동차, 휴대폰이 오히려 외국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팔려도 살 사람은 다 산다. 그렇다면 유독 의료비에 대해서는 부담을 크게 느끼는 걸까.

지난 2009년 국립암센터는 암에 걸렸을 때 어떤 곳에 얼마의 비용을 쓰는지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암환자 1명당 쓴 의료비는 급여, 비급여를 포함해 177만원에 불과했다. 경증 암환자가 많이 포함된 평균치이지만 생각보다 큰 액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암 치료 때문에 소득이 중단돼 생기는 손해는 이보다 4배나 많은 678만원이었다.

국민들은 아팠을 때 어디에 돈이 드는지 모른다. 그냥 아파서 드는 돈은 다 의료비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앞서 국립암센터의 암 인식도 조사에서 ‘치료비 부담‘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이환손실, 사망손실과 본인부담의료비를 구분해서 답했을까.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이 OECD 평균에 못 미치지만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상병수당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질병으로 직장을 잃었을 때 실업급여가 지급되지만 휴직이나 아예 고용보험 대상자가 아닌 자영업자는 이마저 받을 수 없다. 국민연금은 사망 시 사망일시금이나 유족연금을 지급하지만 충분하지도 않고 가입기간이 짧으면 그 액수도 적다.

국립암센터의 암 인식도조사에서 ‘치료비 부담‘을 가장 큰 걱정으로 꼽은 사람의 절반은 그 해결책으로 민간의료보험을 가입한다고 답했다.

민간보험은 보통 암 같은 중증질병을 진단받으면 중형차 한 대 값 정도의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 돈을 위해 수십년간 매달 수십만원씩 민간보험에 지출하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더구나 돈을 벌 때는 자동차 할부금을 낼 수 있지만 소득이 중단되면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국민들이 치료비를 가장 큰 걱정으로 꼽는다면 의료수가를 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수가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게 아파서 지출하는 것은 의료비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상병수당이나 유족연금, 사망일시금 같은 사회보장 체계를 갖추고 보완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의료수가를 올리면 환자들의 가계가 파탄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의료수가 정상화를 위한 합리적인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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