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한국에 오자마자 제법 큰 규모의 연구비가 걸린 계획서를 쓰는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계획서 내용을 채우는 것은 그런대로 할 만 했다. 문제는 ‘개조식’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전에도 없는 말이라 인터넷을 뒤졌다. 어디엔가 ‘앞에 번호를 붙여가며 짧게 끊어서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글쓰기 방식’이라고 정의돼 있었다. 따라서 ‘법률 ○○ 개조’할 때처럼, 개조식은 낱낱의 조목을 센다는 ‘개조(個條)’에 ‘식(式)’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만든 말처럼 보인다.

요점을 나열하는 개조식 문장은 ‘-음’ · ‘-임’ · ‘-함’ 등의 명사형 또는 아예 명사 자체로 끝을 맺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명사와 같은 체언(體言)이 강조되고, 더욱이 이들이 조사의 도움 없이 추상적으로 나열되기 시작하면 문장은 빠르게 지리멸렬하는 법이다. 모름지기 용언(用言), 즉 형용사와 동사에 방점이 찍힐 때 글의 생동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우리말만 그런 게 아니다. 영어 논문을 쓰느라 골머리를 앓던 초년 미국 펠로우 시절, 지도 교수는 ‘명사화(nominalization)’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항상 강조했다. “The instability of the measuring device did not preclude the completion of the trials” 대신 “Although the measuring device was unstable, we completed the trials”라고 쓰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the instability of …”와 “the completion of …”와 같은 명사구(체언)는 각각 “was unstable” 그리고 “completed”처럼 용언으로 바꿔 써야 간결하고 뜻이 명확해진다. 삶의 지혜가 양(洋)의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국 생활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 중 하나다.

개조식이 ‘군대나 공무원 사회에서 선호되는 글쓰기’라는 설명도 있었다. 요점만 나열하는 문장이 이해하기 더 쉽다는 논리다. 그래서 익명의 성공 컨설턴트는 ‘개조식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 직장에서 출세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중요한 개조식 글쓰기 방식을 왜 정작 나는 아직까지 몰랐을까. 하긴 내가 아직 출세를 못 한 게 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조식이 군대나 공무원 사회에서 선호되는 방식이라는 말에는 슬그머니 반감이 들었다. 물론 중년 이상인 남자에게 ‘군대 문화’라는 용어가 갖는 부정적 함의 때문이렷다.

‘공무원’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이 말을 들으며 변화를 거부하는, 권위주의에 물든 공무원 사회의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을 먼저 떠올린 게 나만은 아닐 터.

개조식 문장이 이해하기 쉬워 선호된다는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개조식 문장 기술 방식 독자 이해 용이 이유 선호” 이 말을 읽고 단박에 그 뜻을 알아 챌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글을 쓸 때마다, 산문에도 운율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내재된 운율을 끄집어내면 문장은 미려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동감이 회복되고, 글은 쉬워진다.

따라서 개조식의 문제는 더 큰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조식 문체를 요구하는 관행은 그렇지 않아도 마뜩찮은 이과 출신의 문장력을 더 저급한 수준에 묶어 뒀다. 운율을 고려해 단어를 공교하게 배치하는 일에 굳이 시간을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상적 개념어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개조식 기대감이 우리네 글쓰기를 혹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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