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는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해 구성된 위원회로 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 요양급여 비용, 보험료 등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이다. 요양급여의 상대가치점수, 약제·치료재료의 상한금액 등을 정하는 곳이니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와 보험금을 정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전국민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건정심은 우리나라 보건정책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건정심은 노동자, 경영자, 시민단체가 포함된 가입자 대표 8인과 의약계 대표 8인, 정부와 정부가 임명하는 전문가로 이뤄진 공익대표 8인, 총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건정심이 건강보험의 보험료와 보험금을 결정하는 곳이기 때문에 의료계는 매년 수가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가입자단체들은 보험료 인상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수가, 보험료 조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기억은 거의 없다. 실제로는 이런 논의 끝에 결국 정부가 정한대로 결정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의료의 수가와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이렇게 결정된다면 요양급여의 범위와 대상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 일반적인 생각에 가입자 단체들이 요양급여의 범위와 대상을 넓히기 위해 노력할 것 같지만 구성원을 보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건정심의 가입자 단체는 사용자, 근로자,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자영자단체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사용자는 의료서비스를 직접 이용하는 자라고 보기는 어렵고 근로자 전체가 납부하는 보험료만큼을 부담하는, 말 그대로 돈만 내는 곳이다. 보장성 강화보다는 보험료 인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의료비는 일생의 특정 시기에 몰아서 지출되는 특징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생애 의료비의 절반을 65세 이후에 지출한다. 이것을 65세까지 생존한 사람을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면 65세 이후에 지출하는 비용은 평생 의료비의 약 70%에 이른다. 근로자, 농어업인단체, 자영자단체와 같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의료비를 주로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더군다나 사원 복지의 한 방법으로 본인과 배우자, 때에 따라서는 직계가족까지 민영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을 단체보험 형식으로 제공하는 대기업노조들은 굳이 보장성 강화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오히려 보장성 강화로 인해 보험료가 올라가면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의약계 대표들이 모두 의료 수가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비급여 진료가 많은 단체나 수가와 직접 관련이 없는 단체를 고려하면 실제 이에 관심을 갖는 의약계 대표는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한국제약협회 정도다.

장애나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 현재 중증질환 환자나 그 가족은 당장 받는 혜택이 크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에 덜 민감하다. 사실 보험료가 인상되더라도 보장성이 강화된다면 이들에게는 이익이 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정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결정하는 위원회에 의료기관 이용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최근 의협은 건정심이 정부 의향대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며 의료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맞는 말이다. 정부는 지난 2010년 건정심 위원의 일부를 교체했는데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던 시민단체와 공익위원을 대신해 의료에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경제학자와 보수적 보건학자를 배치했다. 아쉬운 점은 그 당시 의료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대하기는커녕 은근히 반겼다는 것이다. 건정심 위원 선정에 정부가 지나친 권한을 행사하는 게 문제라면 당시의 위원 교체를 반대하고 공정한 위원 선정 방법을 논의해야 했다.

지금의 공익위원 구성은 건강보험 정책이 가입자나 의료계의 의견보다 정부의 의견이 지나치게 반영되게 한다. 의료계 대표는 요양급여의 기준, 비용에 직접 관련이 없는 단체가 더 많고 가입자단체도 건강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어 보험료 인상을 통한 보장성 강화보다 보험료 인상 반대에 더 관심을 갖기 쉽다.

건정심 구성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현재의 건정심 구성이 우리사회의 보험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적절한지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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