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2006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한 연구에서 건강보험의 원가 보전율이 75%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온 후, ‘원가의 75%밖에 되지 않는 건강보험 수가’는 현 건강보험제도의 불합리성을 상징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연구를 발표한 곳에서는 결과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을 테지만, 건강보험제도를 비판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예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간과되는 것이 있다. 비급여 항목의 원가보전율은 192%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항목을 살펴보면, 병실료차액은 749%, 선택진료비는 348%에 이른다. 이러한 비급여 항목과 급여항목을 모두 포함하면 원가 보전율은 104%로 적정하다는 결론이다.

설사 이 연구 결과가 맞다고 해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상급병실을 운영하지 않고 선택진료비를 받을 수 없는 의원들은 특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 항목도 급여대상인 경우가 더 많다.

이런데도 의사들이 생명을 다루는 병보다 미용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

비급여였던 의료행위가 급여가 되면 수가가 크게 깎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의료계는 급여화를 꺼린다.

하지만 보험급여 적용 시 30~60%만 부담하면 되는 환자들에게 가격인하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수가를 주더라도 급여가 되면 환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은 크게 감소한다. 거기에다 산정특례나 본인부담상한제로 중증환자는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 급여항목은 무상으로, 비급여항목은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이것은 생사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급여가 되면서 수가도 내려가면 환자에게 좋은 일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급여가 돼 비용부담이 줄어들면 환자들은 더 쉽게 검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의사 역시 환자의 부담 때문에 꺼리던 검사도 쉽게 할 수 있다. 공급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료행위가 급여로 전환되면 그 행위량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것을 예상하고 수가를 깎고, 의사와 병원은 원가에 못 미치기 때문에 다시 행위량을 늘려 보충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금 포괄수가제로 해결하려는 과잉진료가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더 이상 내릴 수 없을 만큼 가격을 깎게 되고 의사나 병원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까지 행위량을 늘려야 한다.

급여, 비급여 항목을 종합하면 원가에 맞는다는 연구를 그대로 따른다면 모든 항목을 급여로 하고 원가에 맞는 수가를 주면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충분한 수가를 준다고 급여 등재됐을 때 행위량이 늘지 않는다고 보장 할 수 있을까?

의료계는 일반적으로 ‘무상의료’, 다른 말로 본인 부담을 크게 낮춘 의료제도를 반대한다. 급증하는 수요를 통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저수가도 어쩔 수 없다.

소위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환자 부담을 크게 줄였을 때 과도한 의료기관 이용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들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저수가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과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이들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포괄수가제와 같이 의사와 환자 모두를 통제하는 제도가 충분한 논의없이 시행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OECD국가 중 의료비 증가속도가 가장 빠르고 병원을 가장 많이 가는 우리나라에서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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