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세명병원 건강증진센터 과장)


[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도깨비, 양날의 칼, 가짜병. 이충원 과장이 얼마 전 펴낸 <건강검진, 종합검진 함부로 받지마라> 속에 나오는 단어들은 무주공산인 검진시장의 모습을 대변한다. 객관적으로 신뢰할만한 잣대를 만들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시장은 급속히 커지고 검진에 동원되는 의료기기들은 점점 고급화, 첨단화돼간다. 문제는 너무 첨단화돼서 아주 천천히 진행하거나 머물러 있어서 삶의 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병의 징후까지 모두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암’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의사도 환자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초조함을 느끼기 마련. 확진 검사를 하고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면서 정작 병보다 위험한 ‘의료적’ 환경에 놓이게 되고 그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도 만만치 않다. 이 모든 소모전이 우리 국민이 일 년에 한두 번씩 받게 되는 건강검진, 종합검진으로 인한 것이니 이제 검진도 알고 받자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이 책을 쓴 이충원 과장은 예방의학 전문의로 대구암등록소와 건강증진센터를 거치며 건진, 종진을 둘러싼 복마전을 경험한 결과 의사들이 이런 상황에 브레이크를 걸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충원 과장에게서 듣는 건진·종진, 의사답게 하는 법.

Q 제목도, 내용도 꽤 도발적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A 검진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해서 질병의 결과를 좋게 하는 2차 예방으로 전문의학분야다. 진단검사와도 달라서 검진에 이어 1차 예방과 3차 예방도 함께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 특정 질병이나 암에 걸리기 쉬운 고위험 수검자는 생활습관치료를 하고 화학예방을 포함한 약물처방도 필요하다. 지금은 검진 검사항목에 따라 단편적으로 의사의 참여가 이뤄지는데, 검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의사가 할 때 제대로 된 검진이 이뤄진다. 그런데 지금은 ‘검진사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검진이 의료적인 판단이 아닌, 이해에 따라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최첨단 진단장비가 쓰이면서 위양성, 과진단이 늘어나 불필요한 치료와 추가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제대로 된 검진을 위해서 의사들이 검진의 특수성과 우리나라 검진제도의 일그러진 부분을 알고 있어야 한다.

Q 내용이 꽤 어렵더라. 제목을 봐서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느낌은 아니던데.

A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고발서였다면 더 쉽게, 더 많은 예를 들어서 썼을 거다. 일반인들보다는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분, 특히 의사들이 이걸 보고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일부러 어렵게 썼다. 처음엔 보건의료계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에 출판 문의를 했는데 거절하더라. 의료계 고발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일반 출판사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조기 진단해서 빨리 치료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더라. 인체에 대한 의학적 시각이 없어서 그런 거다. 앞으로 의료는 예방으로 가야 하는데 검진은 그를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의료계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서 썼다.

Q 안 그래도 힘든데 왜 이런 책을 내나 하는 불만을 제기하는 의사들도 있을 것 같다.

A 의료계 치부를 폭로했다고 하는데, 제대로 읽은 분들은 의료, 보건계 학생들의 부교재 아니면 필독서로라도 읽혀야 한다고 하더라. 사실 검진으로 인한 과진단, 위양성 문제는 의사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암 진단을 받아도 다른 병으로 죽거나 없어진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좋은 장비로 검진을 하다 보니 내버려두는 게 상책인 암까지 다 발견된다. 암이 발견됐으니 당연히 의사는 치료를 하는 거고. 만에 하나 진행될 때를 대비해 과잉진료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는 직간접적 비용은 천문학적인 액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들이 이런 부분을 먼저 얘기해야 한다. 그간 보건복지부나 시민사회에서 뭘 하겠다고 하면 의사들은 반대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의사들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의사들은 환자, 시민을 위한다’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의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당장 검진으로 돈 버는 것보다는, 이런 검사는 받을 필요 없고 이런 검사는 받아야 한다는 전문적 판단을 해줘야한다. 의사 입장에서 이런 문제를 책으로 지적한 거다.

Q 첫 페이지에 갑상선 암과 관련된 그래프가 인상적이었다.

A 우리나라 여성 인구 10만명 당 갑상선암 환자가 일본보다 14배 많이 발생하는데 사망률은 비슷한, 이상한 현상을 나타낸 표다. 암등록사업을 해보니까 이해가 되더라. 국가암검진인 유방암 촬영술을 받는데 대부분 치밀유방이니 초음파 검사로 다시 확인하라는 코멘트가 붙고,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가면 비싼 비급여 비용에 망설이다가 병원에서 서비스로 혹은 반값에 갑상선도 해주겠다고 해서 검사를 받는다. 유방엔 별문제가 없으나 갑상선에 암으로 의심되는 종괴가 보인다. 근데 그런 소견은 오히려 정상에 가깝다. 환자는 조기 치료했다고 안심하지만 그게 할 필요가 있는 수술인지 의사들은 알 거다. 더 웃기는 것은 남자들도 갑상선암 비율이 높아진다는 거다. 옆집 아줌마가 갑상선암이라는데 종합검진할 때 나도 해봐야지, 그리고 항목에 넣어 달라고 요구한다. 의사들도 해달라고 하니 그냥 한다. 근데 잠재암으로 보면 흔한 소견이니까 또 암 걸렸다며 치료 받고 돈을 쓴다. 그런 상황에 대해 의사들이 ‘아니다’라고 말해줘야 한다. 지금 안하면 나중에 의사들만 욕 얻어먹는다.

Q 검진프로세스 전반에 의사가 참여해야한다고 했는데?

A 의사가 환자의 위험요인을 다 들어보고 결정해서 검사하고, 결과가 나오면 수검자와 상의해서 치료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종진이나 검진 쪽으로 일부분에만 참여한다. 그게 문제다. 또 모든 의사가 검진에 전문적인 소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검진검사, 선별검사, 확진검사, 진단검사의 차이점이나 민감도, 특이성, 양성음성예측도, 과진단, 위양성 문제도 심각한데 그런 부분을 충분히 아는 분들이 검진을 해야 한다. 전문 훈련도 받고 근무 시간 중 90%는 검진 프로세스에 써야 검진이 올바로 된다.

Q 의사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A 필요 없는 검사는 하지 말자, 최소한 의학적 원칙에 맞게 하자는 큰 틀이 있어야 한다. 원칙을 지켜야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을 받는 거지, 안 지키면 나중에 욕 얻어먹는다. 걱정스러운 것은 갑상선암 같은 건은 집단 소송 가능성까지 있다. 안 해도 되는 것을 괜히 초음파 검사를 해서 수술했으니 과잉진료, 혹은 과진단이다, 불필요한 진료다 해서 소송하면 어쩔 건가. 미국은 그런 사안이 있으면 변호사들이 신문에 공고를 내서 집단 소송을 낸다. 특히 국가암검진인 유방암 경우는 지금 불필요한 치료를 많이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많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됐을 때 결국은 의사가 문제다. 전문가로서의 신뢰도 잃고, 돈은 돈대로 잃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은 전문가로서의 원칙을 지키고, 시민의 건강을 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에서는 유방암검진을 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도 전문가인 의사 집단에서는 아니다,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 과진단·위양성 문제를 분명히 얘기하자, 불필요한 치료로 손해 볼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 그럴 때 의사를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거다. 지금처럼 국가에서 한다고 얼씨구나 편승했다가 사정을 알게 된 국민이 ‘초음파부터 온갖 검사 다하고 뽑아먹을 거 다 뽑아먹었구나’고 생각해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 ■

글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사진 김형진 기자 kimc@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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