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력 부족, 연구 인프라 부재 등에 재정문제 맞물려안덕선 교수 "의사국시에 도입?…의사 보호 정책 차원서 필요"


[청년의사 신문 김효정]

미국, 캐나다 등 여러 해외 국가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히 연구 중인 '의료인문학'이 국내에서의 필요성과 기대효과는 높지만 지속적인 연구·발전을 위한 장애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황우석 사태, 리베이트 문제 등을 겪으면서 최근 의료윤리를 포함한 의료인문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관련 전문인력 부족, 연구 인프라의 부재 등과 함께 재정 문제가 맞물려 지속적인 연구 진행 및 발전이 힘들다는 전망이다.

1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의료인 전문직업성 강화와 의료인문학 발전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이같은 문제를 발표, 지적하며 해결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주통합당 박은수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의학교육학회 의료인문학 연구회가 후원한 이번 공청회에는 고려의대 안덕선 교수, 경희의대 박재현 교수, 이화의대 권복규 교수·김정아 연구원 등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고려의대 안덕선 교수는 먼저 인문의료학이 배제된 의과대학의 교육 문제로 ▲질병 담론의 과학적 해석으로 인한 인간 조명 불가능 ▲인간과 사회에 대한 거시적 이해 결여 ▲인간과 생명현상의 다양한 이해 결여 ▲타 보건의료직에 대한 이해 부족 ▲자기 성찰적 사고 및 비판적 사고 문제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발표했다.

안덕선 교수는 "식민주의 시대의 과학적 의학이 아직도 현대 한국 의학에 토착돼있다"고 지적하며 "의학교육은 이같은 문제에서 벗어나 질병 중심의 과학교육과 인문교육이 병행돼 이루어져야 한다"며 의료인문학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발표에서는 지속적인 의료인문학 연구를 위한 관련 제도 및 법 정비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희의대 박재현 교수는 "지난 황우석 사태 이후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가 굉장히 발전해온 반면, 병원윤리위원회의 활동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며 "이는 모두 인문의료학에 대한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박재현 교수는 관련 재정 확보를 위한 법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민건강증진기금 활용 ▲의생명과학 R&D 기금의 일정부분을 재원으로 확보 ▲'의료인 직무윤리 증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의료인문학이 갖고 있는 학술연구 상의 취약점도 드러났다.

이화의대 권복규 교수는 관련 문제로 ▲의료인문학 개념 및 정의에 대한 혼란 ▲의학 배경을 가지고서 인문사회과학 훈련을 받은 전문인력의 부족 ▲연구 인프라의 부재 ▲학제간 연구경험의 부재 등을 지적했다.

특히 권복규 교수는 "의료인문학 분야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본부, 인문사회연구본부 등에 모호하게 분류돼있어 양 연구 단체에서 관련 책임 소관을 떠넘기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권 교수는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국가는 물론 의사협회 등 관련 기관 및 재단, 각 의과대학의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의료인문학은 타과 연구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학문이지만 아직 이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화의대 김정아 연구원은 미국, 캐나다, 일본의 의사국가시험에 반영된 의료인문학 문항 사례를 발표했다.

김정아 연구원은 각국 의사국시에 반영된 공통 소재 및 학습 목표로 ▲의료인의 의무 및 전문가적 행동 ▲진실 말하기 ▲환자의 권리 및 자율성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동의 ▲ 죽음(죽음에 대한 이해, 완화의료, 연명치료) 등을 꼽았다.

민주통합당 허윤정 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질의응답 및 토론시간에서는 인문의료학의 의사국시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시험 문제의 정답과 오답을 가리는 것만으로 인문의료학적 소양이 쌓일 수 없다는 것.

이에 안덕선 교수는 "인문의료학 문항이 의사국시에 포함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최근 관련 사건으로 인한 의사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교육과 시험은 별개의 문제이고, 윤리 등을 강조한 인문의료학 시험 문항 도입은 의사 보호 정책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인문의료학이 학교 교육에만 치중돼있다는 지적에 허윤정 위원은 "넓게 본다면 현재 활동 중인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 등 여러 분야의 보건의료인까지 (인문의료학) 교육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면서 "오늘 공청회를 계기로 어떤 분야, 레벨에 맞춰 교육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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