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김진구] 문제의 핵심은 한의사의 예외적 조제권과 자의적 확대 해석

제도개선 시급 … 반대로 가는 ‘한의약육성법’

작년 6월 국제 암 전문학술지인 ‘Annals of Oncology’ 6월호에 한약 ‘이성환(일명 넥시아)’을 이용해 신장암에서 폐로 전이된 환자를 치료해 종양이 소실된 사례가 소개됐다.

이 소식은 “한약 넥시아 4기암 치료했다”(문화일보 7월 9일자), “한약재로 말기암 환자 치료… 해외서도 인정”(한국일보 7월 9일자), “해외서 주목 끈 말기암 정복 도전 한의사”(연합뉴스 7월 9일자) 등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넥시아 개발자인 경희대 한의대 최원철 교수는 “한방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입증했다”며 한의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많은 언론들은 한방 항암제 개발의 우여곡절과 최 교수의 도전과 시련을 부각시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4기암 완치율은 양방에서 1%이지만 한방에서 넥시아로 치료했을 땐 10%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말기암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 교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말기암 환자에게 ‘메시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최원철 교수와 그가 몸담고 있는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는 식약청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들이 수사를 받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의혹 때문이다.

첫째 넥시아를 외부기관을 통해 대량 생산했다는 의혹이고, 둘째는 현재 임상시험 중인 ‘AZINX75(이하 아징스75)’를 공급받아 환자에게 투약한 의혹이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원철 교수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언론에 호소했다. 그는 “식약청이 한의사의 한약조제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뿐 아니라 최 교수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과 트위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혐의를 주장했다.

급기야 최근 공중파 방송에서 넥시아를 둘러싼 진실을 밝히겠다며 기획 취재한 내용을 내보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의혹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방송은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려, 국민들의 혼란을 더 가중시켰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넥시아와 관련된 핵심 쟁점과 사실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논란 1> 최원철 교수 ‘넥시아는 한약’ vs. 식약청 ‘대량 생산 의약품’

최원철 교수는 “넥시아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건칠, 즉 옻 성분을 이용한 한약이기 때문에 한의사인 본인이 한약을 만들어 환자에게 투약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약사법 부칙 <법률 제8365호, 2007.4.11> 제8조에 명시돼 있던 “한의사는 자신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한약 및 한약제를 자신이 직접 조제하는 경우 의약품을 직접 조제할 수 있다”는 부분을 말한다. 하지만 해당 조문은 이후 개정된 약사법에서는 삭제됐다.

최 교수와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는 “한약의 안전성을 위해 전처리 과정인 포제 과정을 거칠 수 있고, 여기에 필요한 탕전실을 병원 내부 또는 외부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넥시아 생산 및 투약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한의사가 한약 조제권이 있다고 이를 확대 해석해서 제약회사처럼 대량으로 약을 제조해서 파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식약청은 최 교수가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를 찾는 다수의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넥시아’를 외부시설에서 대량 생산해 판매한 혐의로 수사를 진행했으며 현재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논란 2>원외 탕전실 vs. 의약품 제조 시설

2009년 5월 복지부 한약정책과에서 발표한 ‘원외 탕전실 설치·이용 및 탕전실 공동이용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요양병원, 한방병원 및 한의원에서 탕전을 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탕전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탕전실은 조제실, 한약재 보관 시설을 갖춰야 하고 한의사의 처방전, 조제 작업일지, 한약재의 입출고 내역, 조제한 한약의 배송일지 등을 갖춰야 한다. 탕전(湯煎)은 ‘약을 달이는 행위’를 뜻하는 한방 용어다.

최 교수는 안전을 이유로 원내 탕전실에서 넥시아를 제조하지 않았다. 그는 “넥시아의 주재료인 옻나무는 우루시올(urushiol)이라는 알러지 성분이 있어 병원 내에서 제조하기에 위험하다”며 “(재)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과 시설 계약을 맺고 한의사, 한약사가 참여해 포제하고 있고 에이지아이라는 업체의 품질관리(QC)를 통해 병원 약제부에 입고해 조제가 이뤄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포제(製)는 일종의 ‘전처리’ 과정을 뜻하는 한방 용어다.

그러나 식약청의 한약규격집에는 포제과정도 조제과정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 교수의 말대로 한의사, 한약사가 포제과정에 참여하더라도 실제로 포제과정이 이루어진 곳이 ‘원외 탕전실’이 아니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본지 취재 결과, 전처리를 하고 있다고 하는 (재)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원외 탕전실로 등록이 돼 있지 않았다. 강원도청 및 춘천시청 식품의약과 담당자는 “시·도 내에 원외 탕전실로 신고된 곳은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선 넥시아를 등록된 탕전실이 아닌 곳에서 대량으로 제조한 것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넥시아를 포제한 곳이 원외 탕전실이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직접 원외 탕전실에 가서 조제한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란 3>‘모든 한약, 조제 및 판매 가능’ vs ‘자의적인 확대 해석 위험’

한의사협회에서는 넥시아와 관련된 논쟁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이미 수차례에 걸쳐 SCI논문을 통해 검증됐고, 한방의료기관에서 예비조제를 할 수 있음에도 식약청은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여 한의계의 현실을 무시하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한의사들이 포제(법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법 어디에도 한의사가 처방전 이외에 한약을 사전에 제조해 판매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전통적인 한방 치료에서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뒤 그에 맞는 한약을 개별적으로 조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된 한방 치료다. 이렇게 허용된 조제 범위를 확대 해석해 사실상 제약회사처럼 대량으로 약물을 생산하더라도 한의사의 허용된 업무 범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식약청의 입장이다.

한의계의 주장대로라면 약전에 나온 모든 약초를 가지고 한의사가 대량으로 약품을 개발 제조해서 환자들에게 유통 판매하는 사실상 제약회사의 역할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한의원에서 소량 생산되는 약물에 대해서도 식약청이 안전성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과거에는 없었던 주사 약물을 한의사들이 직접 만들어 ‘약침’이란 이름으로 주사기로 주사하고 있으나 보건 당국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혈관에 주사하는 약물을 제조하는 데 대한 규제가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 세계적 망신이 될 것”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보건 당국이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의계는 “정맥으로 주입되는 약물이 소량이고 지금까지 큰 부작용 보고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규제 근거가 없어 답답한 것은 의료계만이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 부처 한 공무원은 “한의사들이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답답한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논란 4>최 교수, 관련 회사 대주주…한방은 연구윤리 무관?


의학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엄격한 의료윤리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의사는 물론이고, 한의사도 역시 자신이 개발한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상용화할 때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2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넥시아의 양방 치료제로 알려진 아징스75는 강동경희대병원 임상시험심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에서 이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 간 말기암 환자에게 투약되고 수차례 논문으로 제출되기도 했던 넥시아는 연구에 있어 IRB의 관리 감독을 받지 않았고 환자들에게 연구 동의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약전에 나오는 한약을 가지고 치료하는 것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약이라고 하더라도 임상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라면 환자 동의와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상 연구에 있어 약자인 피험자를 지켜주는 것은 IRB와 환자 동의서 외에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동경희대병원 IRB에 문의한 결과 “독립적인 기능을 하지만 우리도 병원 소속이다. 따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홍보실을 통해 질의하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의료윤리 전문가들은 새로운 의약품과 의료기술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가치와 환자의 안전이라는 가치가 충돌한다고 말한다.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연구자는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연구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 하며, 또한 연구자의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 부분이 없는지, 비용 효과는 어떤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의 넥시아 연구는 이해 상충 부분에 있어서도 논란이 있다. 넥시아와 아징스75를 제조하는 데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주)에이지아이라는 업체는 최 교수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입수한 신용평가기관의 기업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최원철 교수는 (주)에이지아이의 지분 57%를 가진 최대 주주이자 공동 대표이사였다.

이렇게 연구자의 연구가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얽혀 있는 경우에는 연구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향을 미치는 비틀림(bias)을 줄 수 있고, 환자의 안전보다 연구 결과에 치중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임상연구 전에 밝혀야 할 사항이다.

한의사들도 이런 연구자의 윤리나 임상연구의 법률적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한의계는 “한의약은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환자 안전이나 권리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수천년 검증된 안전한 우리 전통의학에 대한 몰이해’라며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임상연구에 있어 기본적인 윤리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밝혀질 경우 연구 중단 및 논문 게재 철회 등 강력히 제재하는 일반적인 의과학 분야와는 달리 한의학에서 진행하는 연구에는 이런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작년 본지가 다룬 편강세한의원 사건(515호 커버스토리)의 경우도 B형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약 임상시험을 하면서 혈액검사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임상시험 대상자에게 치료비를 받는 등 임상연구의 기본을 완전히 무시한 사례였다.

의사들과 환자들이 함께 고소 고발까지 제기했으나, 검찰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해당 한의원은 지금도 성업 중이다. 이는 한의학 분야에서 ‘연구’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넥시아 사건을 보면서 한의학의 과학화 세계화를 위해서 시급한 것은 한의사에게 현대의료 장비 사용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임상연구 방법과 연구윤리 관련 내용을 교육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며 “최근 한의약육성법 개정으로 한의약을 현대화 세계화, 산업화 하겠다는 정부의 취지가 한편으론 이해되지만, 그 전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통용되고 있는 연구방법을 한의사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 5>SCI 논문으로 효과 검증 vs 큰 의미 없는 단순 사례보고

강동경희대병원, 한의계, 최원철 교수, 말기암 환우회 등은 이번 식약청의 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의약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최 교수의 노력을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를 한다는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성명서를 통해 “넥시아 치료를 통해 말기암 판정 환자들에 대한 생존률이 높아졌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들에게 투약하는 것을 막는 것은 건강확보권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 교수가 발표했다는 논문들을 확인한 결과 해당 논문 대부분이 일반화할 수 없는 증례보고에 불과했다. 넥시아가 기존의 항암제 치료에 비해 우월하다는 내용이나 근거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한국임상암학회의 입장이다.

논문 원문을 확인해 보니 연구자들 스스로도 ‘넥시아는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거나 항암제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안적으로 고려할 수도 있을 것(Treatment with aRVS might be a viable alternative in patients for whom chemotherapy is not feasible, or who refuse chemotherapy.)’이라며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리고 있다(Forsch Komplementmed. 2011;18(2):77-83. Epub 2011 Apr 4).

지금까지 발표된 대부분의 논문들은 증례보고 형태였으며, 종양이 저절로 감소하는 ‘자연감소(spontaneous regression)’가 아니라 넥시아로 인해 암이 치료된 것임을 증명한 논문은 한 편도 없었다.

종양내과 전문의들은 “의학적으로 치료하지 않은 종양이 저절로 사라지는 자연감소 현상은 드물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암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신장암의 경우 가장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보통 전이가 있으면 수술 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신장암은 전이가 있어도 수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넥시아 사례 보고에 포함된 환자들 중 다수가 신절제술을 받은 신장암 환자거나 항암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임상암학회는 기존에 발표된 넥시아 연구를 분석한 결과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넥시아의 효과인지 기존 치료에 따른 결과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며 “대부분이 산발적인 증례보고와 근거 강도가 낮은 후향적분석이라 앞으로 효능 및 안전성 입증을 위해서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신중한 의견을 내놓았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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