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야생 아몬드는 먹히면 치명적인 시안화물을 생성한다. 쓴 맛을 품고 있는 아몬드는 종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진화한 경우다. 하지만 인간이 쓰지 않은 돌연변이 아몬드 나무를 우연히 발견,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야생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지닌 아몬드 나무가 번성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맞이하게 된다. 대를 내려올수록 그 성질이 강해지고 결국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야생 아몬드는 개체 수에서 완전히 뒤처진다. 그러나 야생 아몬드를 열등한 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인간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불리한 특징으로 결정지어졌을 뿐 포식자를 죽이는 야생 아몬드의 생존방식도 나름대로 훌륭하다. <총, 균, 쇠>는 이 아몬드처럼 인간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다른 길을 걷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진화 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2년 뉴기니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얄리의 질문 때문이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의약품, 성냥, 의복, 우산 등)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것입니까?”

가장 못사는 백인조차 뉴기니의 능력 있는 정치가보다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던 시기, 1세계 출신 생태학자에게 던져진 이 단순명료한 질문은 그를 역사, 고고학, 언어학, 기술, 문자, 정치를 넘나드는 25년간의 지식여행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5년 후 저자는 얄리의 질문에 ‘대충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조심스러운 대답을 내놓았다. <총, 균, 쇠>가 바로 그 대답이다.

750여 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을 저자는 친절하게도 한 문장으로 요약해준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가 다양한 운명으로 갈라지게 된 이유를 각 민족을 둘러싼 환경에서 찾았다. 환경이 선택한 결과가 현 문명의 우열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문명의 차이를 맞이하게 됐는지를 저자는 문명시대 이전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꼼꼼히 짚어낸다. 농경 선택을 시작으로 문명의 우열을 결정지을 다양한 갈림길을 지나온 후 유라시아인은 패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중국, 유럽과 아메리카원주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만남 등 전 세계, 역사 곳곳에서 되풀이 된다.

농경을 통한 정착생활의 선택은 이들에게 쇠와 총을 만들 만한 기술, 균에 대한 내성을 선사했고 이로써 인간은 폭력과 효율, 우연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는 자를 승자로 택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총, 균, 쇠에 의해 완전히 재편된 현 문명사회가 진정 우월한 것인지를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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