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찬생각] 국가교육위원장의 ‘의대 전형’ 발상, 우려된다
곽성순 기자의 ‘꽉찬생각’
국가교육위원회 차정인 위원장은 지난 3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지역 필수의료 인력 문제를 국교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며, 의대 전형을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지역 필수의료 전공 ▲의사과학자 학·석·박사 통합 과정 ▲일반 전형 등 3가지로 나누는 방안을 제안했다.
특히 의대생을 입학부터 분리 모집하고 전공의 기간에 해당 전공에서만 유효한 면허로 근무하도록 하면 지역 필수의료 인력을 필요한만큼 양성할 수 있다고 했다. 더해 기피과로 인식되는 산부인과와 소청과 등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 제공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현실 진단보다 처방이 앞섰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점이 많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필수의료’의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몇몇 임상과를 필수로 규정하는 시각이 있지만, 지역에 따라 꼭 필요한 의료 분야는 다르다. 어떤 지역은 분만 인프라가 부족하고 다른 지역은 정신건강, 노인의료 등이 더 절실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앙 정부가 일률적으로 필수의료를 규정하고 이를 의대 전형 선발 기준으로 삼는 것은 복잡한 현실을 너무 단순화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 기준이 흔들리면 정책 역시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입학 단계부터 전공을 확정하는 구조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의학 교육은 다양한 임상 경험을 통해 적성과 전문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분리 선발과 제한적 면허제도는 학생에게 너무 이른 시점에 진로를 고정시키게 된다.
이는 개인의 진로 결정권을 제약할 뿐 아니라 결국 해당 전공에 대한 지속적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개인 적성을 알기 전 정책에 따라 억지로 시작한 학문의 길에 오래 남아 있을 학생이 얼마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특정 전공 지원자에게 병역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한다. 병역은 국가 의무고 의료정책은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것인데, 두 제도를 직접 연계하는 순간 정책 목적이 흔들린다. 병역 혜택은 강력한 것이지만 부작용도 크다. 공정성 논란은 물론 제도가 ‘병역면제라는 혜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방안들이 필수의료 기피의 근본 원인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필수의료가 외면받는 이유는 단순히 전공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과중한 근무 환경, 높은 위험 부담,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구조 때문이다.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선발 방식’과 ‘의무 부여’만 바꾸면 몇 년 뒤 또 다른 미봉책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필수의료 인력 확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해결책 마련에만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필수와 비필수를 나누는 새로운 의료 양극화를 만들 수 있다. 특정 과에 인력을 묶어두는 방식보다 어느 지역에서든 필요한 진료가 지속될 수 있는 근무 환경과 의료 인프라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
정책은 방향만 옳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실험적 제도 도입은 부작용을 키울 뿐이다. 의료는 한 번 틀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전형보다 더 촘촘한 현실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