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해소” 영역 확장 나선 한의협…"의사 부족, 한의사로"
[인터뷰]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 "진단기기 특정직역 전유물 아니다" "의사 독점 벗어나야"…‘한의약처’도 요구
한방 의료기관의 경영난이 장기화하면서 위기에 놓인 한의사들의 ‘영역 확대’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비롯해 지역·필수·공공의료 참여, 문신사 안전관리 교육 주체 지정까지 정부를 향해 역할 확장을 위한 제도 개선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 부재와 안전성을 우려하는 의료계 반대에도 한의계는 이같은 요구가 ‘직역 이익’이 아닌 “특정 직역에 집중된 제도적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의사 노인주치의제’가 국정과제로 포함되며 역할 확장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의계가 강하게 반대해온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 역시 ‘원점 재검토’ 결정이 내려졌고, 한의사 엑스레이(X-ray) 사용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되며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해당 개정안은 한의사에게도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 관리 책임을 맡도록 한 것으로 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에 지난 15일 위기와 기회의 접점에 서있는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을 만나 한의계가 바라보는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들었다. 또 최근 대통령 한의사 주치의로 임명된 윤 회장에게 이전과 달라진 정부와의 소통 분위기와 향후 한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물었다. 윤 회장은 “의사 중심 독점 구조 속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의료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며 한의약정책 관련 독립부처 신설도 주장했다.
- 4월 한의협회장으로 취임했다. 그간 회무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취임 후 한의계 제도적 권익 신장을 위한 기반 다지는 데 주력했다. 특히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며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한의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료계 전반의 전화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특정 직역의 의료 독점으로 인해 한의계가 정부 보건의료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필수의료, 만성질환관리, 무의촌 의료 활동 등 한의사를 활용할 수 있음에도 의료계 중심으로만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에 머무는 부족한 의사를 충원하는 것보다 OECD 통계에도 의사로 포함된 한의사를 활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시적인 대안이다.
-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 산적한 한의계 주요 현안에 대해 이번 정부와 논의는 진전이 있나.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복지부·질병관리청 등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아직 요원한 상태다. 전 정부에서는 의료계와 갈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한의계 뿐 아니라 타 직역 관련 현안도 대부분 보류됐다.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고 있다. 특히 대선공약에 포함된 ‘한의사 노인주치의제’ 참여와 재택진료 다양화를 위해 추진 중이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또 공공의료사관학교 내 ‘한의사 클래스’ 신설도 제안했다. 초고령사회 부족한 의사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의사 활용이 중요하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 한의사들도 엑스레이 등 진단용 방사선기기 사용 근거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일부 의료기기업체들이 한의사의 엑스레이(X-ray) 사용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의료기기업체들이 한의사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과거 일부 단체가 국내·외 유수의 의료기기업체에 ‘한의사와 거래를 하지 말라’는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직역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료 선택권 확대와 의료기기 산업 성장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다. 한의협은 필요하다면 대형 의료기기업체들과도 협의해 나가며, 법안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다.
- 한의학 이론 체계와 진단기기 사용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진단기기는 특정 직역의 전유물이 아니다. 환자의 상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한 보편적 의료 도구다. 환자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오히려 진단기기의 적극적 활용은 의료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사용해 국민 건강을 지킬 것이냐’이다. 국민 진료 선택권을 제한하고 낡은 논리에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일이다.
- 약침 등 치료 목적 한방 비급여 실손보험 보상 대상에 추가하는 것은 회장 선거 당시 주요 공약이었다. 보험사나 정부와의 논의는 어느 정도 진전됐나.
‘첩약·약침·한방 물리치료 실손보험 재진입’은 한의계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의료 선택권과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과제다. 이미 정부가 치료 행위로 인정한 항목임에도 실손보험에서 배제된 것은 제도적 모순이다.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는 실손보험 적용을 받지만 약침이나 추나치료는 제외돼 있다. 결국 환자들은 실손보험 보상이 되는 의과 치료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공정경쟁이 아닌 구조적 차별이다. 한의협은 정부·금융당국·보험업계와 협의를 이어가며 한방 비급여 항목의 실손보험 보장 재진입을 반드시 실현하겠다.
- 추진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에도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향후 대응 계획은.
자동차보험은 국민 안전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일환이지 보험사 손해율 개선을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이번 개정안은 소비자단체나 의료인단체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으며, 절차적 정당성마저 결여돼 있습니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김윤덕 장관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에 대한 ‘원점 재검토’ 방침을 표명한 바 있다. 국민 안전과 건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끝까지 대응해 나가겠다.
- 소외되는 ‘제도적 불공정’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은 의사 중심 독점 구조 속에서 움직여왔다. 그 결과, 의료대란과 의료파업이 반복되고 국민의 생명이 특정 직역 이익 조정 수단처럼 이용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공공의대 신설 정책이 의료파업으로 무산됐고,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의대 정원 증원도 의사단체 반발로 좌절됐다. 심지어 불법 파업과 태만에 따른 징계는 유야무야 됐고 의사국가고시 기회 제공의 특혜가 주어졌다. 현재 의료정책 구조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부는 이제 의료계 압력과 반발에 휘둘리지 말고 국민의 의료편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향적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한다. 모든 직역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한의사는 과학적 근거와 임상 경험을 갖춘 준비된 의료 인력이다. 정부가 한의사 역량을 적극 활용할 때 국민 중심의 통합의료체계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의계가 문신 시술 안전관리 교육·관리 업무를 맡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문신사법 통과는 한의사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향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문신사들의 시술 안전교육과 관리 주체를 의료인으로 정한다면 ‘침’ 전문가이자 문신에 사용되는 ‘천자침’을 실질적으로 다뤄온 한의사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하위 법령 제정 과정에서 문신사의 천자침 사용에 대한 안전관리와 감염예방 교육을 한의사가 담당하도록 제도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문신을 의료행위로 시행하려는 모든 의료인들이 한의사의 전문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할 예정이다.
- 디지털헬스 시대, 한의학은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넓혀갈 수 있을까.
전통의학이 가진 경험적 자산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정밀의학이 만나면 의료 효율성과 접근성이 혁신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한의협도 이미 ‘한의약 AI 융합 추진 TF’를 발족해 한의 임상 데이터 표준화,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AI 진단보조시스템 개발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맥진·설진·안색 등 전통 진단요소를 센서와 영상기술로 수치화하고, 환자 맞춤형 한약 조합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해 개인 맞춤형 의료를 구현하는 게 목표다. 지금의 ‘고비용·단기치료’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한의약을 기반으로 한 ‘저비용·고효율’ 의료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 대통령 한의사 주치의로 임명됐다. 정부와의 소통에 변화가 있나.
한의사 주치의로 임명됐다고 달라진 건 없다.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된 것은 큰 영광이지만 그 역할과 한의협회장으로서의 직무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치의로서는 한의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이며, 협회장으로서는 한의계 전체의 제도적 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정책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두 역할이 혼재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
- 임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는 무엇인가.
치료 목적 한방 비급여 실손보험 재진입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동일한 일에는 동일한 임금’이라는 평등 원칙은 의료 정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인도처럼 전통의학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같은 위상의 ‘한의약처’ 신설이 필요하다. 정부가 한의약에 대한 체계적 지원에 나설 때 진정한 의료 균형과 국민 중심의 통합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