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걸음마 뗀 한국 입원의학, 일본에서 길을 묻다

경태영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 교수

2025-10-04     경태영 연세의대 교수

일본에서는 종합진료과를 두고 ‘고미바코(쓰레기통)’라는 말이 있다. 종합진료과란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와 입원의학과를 합친 정도의 전문과목인데, 여러 중증질환이 겹쳐 어느 과에서 봐야 할지 모를 환자들을 모두 종합진료과에서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자조 섞인 별명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경태영 교수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응급실에 원인이 불분명한 중증 환자가 오면 각 진료과 의사들은 명백히 자기 분야 문제가 아니면 입원장 내기를 망설인다. 이럴 때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들은 일단 환자를 입원시키고 여러 진료과와 상의하며 치료방침을 결정한다. 외래 없이 병동환자만을 전문으로 맡아보는 입원전담의들의 고충이자 보람이다.

얼마 전 일본 히메지에서 열린 일본병원종합진료의학회(JSHGM)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JSHGM은 지난 2010년 발족해 현재 2,500여명의 호스피탈리스트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학회다. 올해 발족해 아직 걸음마 단계인 대한입원의학회(KAHM)로서는 앞서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도입·정착시킨 일본의 사례를 통해 벤치마킹을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번 방문에서 양 학회 회장단은 양국 제도 진행 과정과 현안 등을 공유하고 향후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호스피탈리스트 교육과 양성, 제도 발전에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국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은 ‘종합적으로 환자를 보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호스피탈리스트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본은 20여년전부터 자발적 필요에 의해 병원들이 호스피탈리스트를 두기 시작했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JSHGM이 연 1~2회 인정의, 전문의 자격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인정의나 전문의 자격을 딴다고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정의 1,000여명, 전문의 120여명이 시험을 통과했다고 한다. 학회의 부단한 노력과 스스로 전문능력을 높이겠다는 호스피탈리스트들의 진지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 지난 2018년 신전문의 제도가 시작되면서 종합진료과(General Medicine)가 19번째 전문과목으로 인정되면서 의대와 대학병원에서도 호스피탈리스트 교육과 수련과정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호스피탈리스트가 될 소중한 씨앗을 배양하는 것이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입원전담의 제도 시범사업을 시작한지 만 10년이다. 2021년 본 사업으로 전환하고도 5년 가까이 돼 가지만 아직도 시범 단계에서 별 발전이 없다. 내과학회 추산으로는 2,200명의 내과 입원전담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작년 말 기준 전국에서 근무하는 입원전담의는 70여개 의료기관 370여명에 불과하다.

또 대부분 의대나 대학병원에서 정식 전문과목으로 개설되지 않아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전문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 일하는 입원전담의들은 전문성에 자부심을 갖기 보다는 쉽게 이직을 고민하기도 한다. 입원전담의를 해보겠다고 꿈꾸는 의사는 더더욱 드물다. 병원들이 고액연봉을 내걸고도 입원전담의를 구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입원의학은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입원환자를 전담하는 전문의가 환자 안전을 지키고, 진료 연속성을 높이며, 의료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 수요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입원의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결국은 입원전담 전문의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일본도 15년전 겨우 의사 80명이 중심이 돼 학회를 시작했다”는 JSHGM 타즈마 스스무 회장(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의 말은 우리에게 방향성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준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문 교육과정 마련, 연구를 통한 학문적 뒷받침, 제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일본이 보여준 성장의 길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번 일본 학회와의 만남은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한국 입원의학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작은 걸음이지만, 언젠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의료의 변화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그 길의 끝에는 더 안전하고 신뢰받는 병원 진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