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제도에 가로막힌 ‘의사과학자’…협회 설립으로 돌파구 찾는다
'한국의사과학자협회' 설립 준비 “지속가능한 제도 만들자” 이민구 교수 “군의관 부족 이유로 의사과학자 차출” 김영주 교수 “임상만 강요하는 시스템, 미래 없다”
국내 의사과학자가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육과 연구 환경 구축을 위한 ‘한국의사과학자협회’ 설립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제도적 장벽에 막혀 한국에서 연구와 진료를 병행하는 “불가능한 일”을 지속가능하도록 제도·재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의사과학자협회 설립준비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지난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한국의사과학자협회(Korean Association of Physician-Scientists, KAPS) 설립 공청회’에 모인 의사과학자들은 국내 의사과학자 양성 체계 문제점을 짚고 협회 설립을 통해 해결책을 만들어가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이사장은 “우리나라 의과대학은 6년제 제도인데, 여기에 MD-PhD 제도를 도입해 6+4 또는 6+3 제도로 학제 개편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NIH MSTP(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와 같이 국가에서 MD-PhD를 잘 운영하는 대학에 대해 집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 리서치 레지던시 제도가 없다. 임상과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지만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며 “젊은 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인 K 어워드 역시 활발하지 않다. 이 세 가지가 의사과학자 육성의 핵심인데, 미국은 세 가지를, 일본도 두 가지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해 낙후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영국의 NTN(National Training Number) 제도를 소개하며 “전공의 시절부터 트레이닝 넘버를 부여받아 독립된 연구자가 될 때까지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한다”며 “우리도 협회가 만들어졌을 때 국가 관리 체제를 고민해야 한다. 협회를 통해 체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가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연세의대 이민구 교수는 우리나라 의사과학자 양성의 가장 큰 걸림돌로 ‘병역 문제’를 꼽았다. 최근에는 군의관 부족으로 ‘전문연구요원’ 트랙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 교수는 “해마다 8~10명쯤 전일제 박사를 하겠다고 한다. 그 중 3~4명은 군의관 부족으로 전문연구요원 트랙에 있는 의사과학자를 군의관으로 데려가는 일이 근래 많이 발생했다”며 “국방부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전문연구요원) 사전 조사도 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복지부가 의사과학자 비율을 3%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절반을 다시 군으로 데려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는 의사과학자 양성은 불가능하다”면서 “의사과학자 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국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부처를 아우르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사과학자들은 임상 현장에서 연구를 병행하는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연구비가 단순히 프로젝트 운영비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세브란스병원 안과 전익현 교수는 “외래도 3~4타임 보고 수술도 두 타임 이상 하는 상황에서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미국은 연구비가 많으면 본인 월급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진료를 줄여도 월급이 바뀌지 않고 연구비가 많아도 월급이 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아쉽다”고 했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김영주 교수는 “임상만 강요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미래가 없다”며 “해외에서는 1년 중 한 달만 진료하고 나머지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구조로는 의사과학자 미래가 없다. 의사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공청회를 주최한 민주당 김 의원도 국회 차원의 뒷받침을 약속했다. 그는 “학문과 연구, 창업으로도 사회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경로를 열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의사과학자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준다면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