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단기간 전문의 될 수 있는 K-의료의 기적

박종훈의 한칼토크

2025-09-22     박종훈 고려의대 교수

환자가 준다고 해서 병동을 통합하는 예가 있다. 예를 들면 3개 병동의 병상 가동율이 각각70% 이하라고 할 때 3개 병동을 2개 병동으로 줄여서 운영하면 환자는 다 수용하고 직원은 1/3 줄일 수 있어서 아주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산술적으로는 2개 병동의 병상 가동율이 90%를 선회하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으니 지표상으로는 아주 건전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1개 병동을 없애고 2개 병동으로 통합하는 경우, 다시 환자가 늘어서 3개 병동 체제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급격한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축소 운영은 예외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상에서의 축소 운영이 당장은 경영 지표를 좋게 보이게 해 주는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라떼’ 이야기를 해 보자. 아니 수십 년 전이 아니라 불과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전공의 근무시간은 주당 120~140시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교육 수련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이 어느 정도일까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대책도 없이 근로 개념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줄였다. 영국의 경우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10년 전 의대 정원을 늘렸다고 하는데, 정원 문제가 아니라 고민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수과의 지원율이 낮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필수과의 경우 4년제를 3년제로 앞 다퉈 바뀌었다. 신기한 일이다. 근무시간이 거의 30~40% 줄었는데 수련 기간은 오히려 1/4이 줄었다. 과거보다 아주 정교하고 밀도 있는 교육, 수련의 개혁이라도 일어났나? 상식적으로 보면 주당 근무시간이 파격적으로 줄었으니 우리도 OECD 국가 수준으로 전문의 과정이 많게는 6~7년 정도로 늘어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파격적으로 줄어드는 마법을 정부와 학회가 만들어냈다. 이런 와중에 이제는 일부 병원에서는 필수과 전공의의 응급실과 중환자실 업무를 줄이거나 없애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련 기간을 3년으로 줄여서 해당과 전공의 지원율이 나아졌을까. 소위 말해서 ‘박 터졌나’. 아이러니하게도 수련을 포기하는 인원에도 훨씬 못 미치지 않던가. 망가져도 이만저만 망가진 것이 아니다. 필수과가 그렇게 간단하게 수련해도 되는 학문이었던가. 학술단체라는 곳들의 결정이 어쩌면 이렇게 근시안적일까. 이는 다분히 전공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병원과 스텦들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정녕 전공의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런 맹랑한 결정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주 규모가 큰 병원의 경우는 수련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함께 해 보지 못하는 교수도 많다고 한다. 겨우 3년에 2개월씩 턴을 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3년 수련한 내과 의사가 내시경을 해봤겠는가, 외과 의사가 맹장을 떼 봤을까. 가뜩이나 환자들 눈치 보느라 전공의에게 시술과 수술을 맡기기 어려운 시대인데, 이제는 시간조차 없다. 오죽했으면 과간 컨퍼런스도 줄여야 할 판이다. 무책임한 학회들이다.

과연 전문의 제도가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공의 부재 기간, 병원은 진료만을 위해서라면 전공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 전공의 제도의 존재 이유를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단기간에 속성으로 마치고 달랑 전문의 자격증 하나 챙겨 나오는 그런 제도라면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수련 제도를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빠르게 손질하면 그 과는 갈수록 평가 절하될 것이다.

그나저나, 정부와 학회 덕분에 전 세계에서 최단기간에 전문의가 될 수 있는 K 의료의 기적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대단한 정부와 학회다. 전 세계 의료인들이여, 전문의를 속성으로 끝내고 싶으면 한국으로 오라. 4년에서 3년제로 만든 학회들은 반성해야 한다. 이제 다시 인기가 있어지면 4년제로 갈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박종훈 지난 1989년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근무 중이다. 고려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싱크탱크인 재단법인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원장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