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남긴 공백…‘의료 AI’ 배움으로 채운 의대생들

의학한림원, 의료 AI 교육 지원사업 4년 성과 공유 의료-AI 잇는 가교 세대 ‘의대생들’ 연구 경험 쌓아

2025-09-19     김은영 기자
18일 열린 ‘2025 국제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K-HOSPITAL+HEALTH TECH FAIR, KHF 2025) 의료 AI 교육 및 해외진출 지원사업 심포지엄에서 고려의대 임예제 학생(왼쪽)과 동아의대 김찬결 학생이 의료 AI 교육 경험을 공유했다(ⓒ청년의사).

지난했던 휴학은 의대생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출발점이 됐다. 예기치 못한 공백기였지만 의대생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의대 생활 속 관심은 있어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인공지능(AI) 분야를 마음껏 배우는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 넣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지난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5 국제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K-HOSPITAL+HEALTH TECH FAIR, KHF 2025) 의료 AI 교육 및 해외진출 지원사업 심포지엄에서 ‘의료 AI 교육’을 통한 지난 4년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의료 AI 교육 및 해외진출 지원사업은 미래 의사들에게 의료 AI를 책임감 있게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체계 마련을 목표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지원을 받아 지난 2022년부터 한림원을 주축으로 진행돼 왔다. 이번 사업은 ▲의대생 대상 AI 역량 교육 ▲의료진·개발자 대상 교육 ▲AI 기업 해외 진출 지원 등 세 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2년 기준 가톨릭의대·고려의대·연세의대를 시작으로 올해 기준 8개 의대가 본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의료 AI 교육 과정에 참여한 의대생 수도 꾸준히 늘었다. 올해 8월 기준 의대에 개설된 정규 과정은 총 120개로 2,019명의 의대생이 참여했다. ‘의료 AI 써머스쿨’ 등 비교과 사업에 전국 40개 의대 소속 의대생 1,972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진과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도 성과를 거뒀다. 의료진은 13개 과정에 1,064명이, 개발자는 12개 과정에 506명이 참여해 현장 중심 역량을 쌓았다. 해외진출 부문에서는 13개 기업에 기술 컨설팅을 제공해 국내·외 인허가와 인증을 획득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고려의대 의학과 2학년 임예제 학생은 한림원에서 추진해 온 의료 AI 교육 사업을 통해 휴학 기간 동안 의대생 코딩 커뮤니티 ‘힐코드(Heal Code)’를 설립, 지난 1년간 운영하며 AI와 의료를 잇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온 경험을 공유했다.

임 씨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접할 수 없던 AI와 컴퓨터 분야에 진심으로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지금도 매달 세미나를 열어 각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힐코드 활동은 이론적 탐구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 생활 문제를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예를 들어 휴학 시기 재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의대 학칙을 기반으로 한 챗봇을 만들어 공익 목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사업지원으로 예일대 바이오인포매틱스 부서 연수에 참여해 세계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의료와 AI 사이의 언어적 간극을 메우는 가교 역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임 씨는 “의료와 AI 협업을 통해 효율적이고 환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라며 “향후 의료현장과 컴퓨터 과학을 잇는 오퍼레이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동아의대 의학과 3학년 김찬결 학생도 지난 1년 의료 AI 속으로 뛰어 들었다. 동아의대 의료정보학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는 김 씨는 “휴학으로 시간이 많아지며 AI와 빅데이터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접했다”며 “임상과목을 마치고 휴학해 연구 참여도 활발히 참여했다”고 했다.

김 씨는 현재 심부전 관련 논문을 집필 중이며, SGLT-2 억제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교수님이 세미나와 학회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셔서 실제 의료 현장에서 AI를 활용한 경험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며 “무료로 양질의 수업을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지난달에는 동아의대와 소프트웨어대학이 공동 개최한 ‘의료 AI 해커톤’에 참가해 의대생과 컴퓨터공학과 학생이 팀을 꾸려 심장 수술 후 뇌졸중·뇌출혈 발생 예측 모델을 개발한 경험도 공유했다. 그는 “협업을 통해 각 전공 전문지식을 결합하는 경험이 소중했다”며 “의료 AI가 시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도 했다.

김 씨는 앞으로 의료 AI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며 “학생 개인의 적극적인 태도, 이를 이끌어주는 교수님의 지도, 한림원과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또 “AI를 통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 후배들이 본격적으로 연구에 나서게 된다면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편, 이번 지원사업은 올해를 끝으로 종료된다. 다만 그간 구축된 교육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비영리단체 ‘투비닥터’와 함께 ‘의료 AI 교육 플랫폼’을 마련, 지식 공유와 네트워킹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