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 사각지대"…DLBCL 환자는 시간과 사투 중
[인터뷰] 고대안암병원 혈액내과 최윤석 교수 "CAR-T 치료의 대기 벽, 즉시 투여 가능한 이중특이항체가 대안"
국내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iffuse Large B-cell Lymphoma, DLBCL) 치료 환경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고위험 환자들에게 '마지막 무기'로 불리는 CAR-T 치료제가 이미 급여권에 진입했지만, 치료 시작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현실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반면, '엡킨리(성분명 엡코리타맙)' 등 즉시 투여(off-the-shelf)가 가능한 이중특이항체가 등장하면서, 환자 생존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로 '시간'이 급부상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 혈액내과 최윤석 교수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CAR-T 치료를 기다리다가 병이 악화하거나 사망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며 "이런 경우 이중특이항체가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제가 눈앞에 있어도 닿지 못하는 현실
DLBCL은 가장 흔한 비호지킨 림프종의 하나로, 전체 환자의 30~40%가 1차 치료 후 재발하거나 불응한다. 이 가운데 일부만이 2차 표준치료인 자가조혈모세포이식에 도달하고, 결국 3차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전체의 10~15%에 불과하다.
바로 이들에게 CAR-T 치료제는 '마지막 무기'로 불린다. 실제로 50개월 이상의 장기 추적 데이터가 발표되면서 일부 환자에서는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줬다.
그러나 CAR-T 치료는 환자 혈액에서 T세포를 꺼내 유전적으로 재프로그래밍해 다시 주입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 과정만 최소 4주, 실제 투여까지는 1.5~2개월이 걸린다.
"저희 병원에서도 환자가 세포 채집까지 보름을 기다려야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DLBCL은 워낙 공격적인 질환이라 그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병이 폭발적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최 교수는 치료제가 눈앞에 있어도 환자들은 '시간의 벽'을 넘지 못해 손에 쥐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 교수가 치료하던 한 환자는 1차 치료 후 3개월 만에 재발해 자가이식을 준비하던 중 다시 병이 급속히 진행됐다. 의료진은 CAR-T 치료를 결정했지만, 스크리닝 검사와 세포 채집 일정만 잡는 데 10일 이상이 걸렸다. 이후 제조에 4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듣고 환자와 가족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치료를 시작하기 전, 환자는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버렸습니다. 의학적으로 CAR-T 치료에 적합한 환자였지만, 상황적으로는 금기증이 돼버린 셈입니다."
CAR-T의 시간 장벽, 이중특이항체가 메운다
이중특이항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부각된다. CAR-T 치료제와 달리 체외 제조 과정이 필요 없어, 병원에 도착한 그 날 바로 처방과 투여가 가능하다.
"엡코리타맙과 같은 이중특이항체는 'off-the-shelf', 즉 즉시 꺼내 쓸 수 있는 약입니다. CAR-T 치료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시간인데,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죠."
실제 이중특이항체의 임상시험 데이터도 긍정적이다. 엡킨리의 경우 3년 추적 관찰에서도 객관적반응률(ORR) 59%, 완전관해율(CRR) 41%, 완전관해 유지기간 중앙값(mDOCR)은 36.1개월로 나타나 수치적으로 CAR-T 치료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즉, CAR-T 치료제가 장기 생존 데이터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면, 이중특이항체는 '즉시 투여 가능성'을 앞세워 진료 현장에서 환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무기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효능은 비슷, 결국 문제는 '접근성'
CAR-T 치료제와 이중특이항체의 작용 기전은 다르다. CAR-T는 환자 자신의 T세포를 꺼내 유전적으로 재프로그래밍해 주입하는 방식이고, 이중특이항체는 체내에 존재하는 T세포를 암세포와 직접 이어주어 공격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치료 모두 면역세포를 이용해 림프종을 공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효능만 보면 두 치료는 거의 그림자처럼 비슷합니다. 차이는 환자에게 도달하는 속도죠. 환자가 당장 내일을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인 만큼, 이중특이항체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중특이항체는 아직 국내 건강보험 급여권에 들어오지 못했다. 환자가 자비로 치료를 감당하기엔 수천만 원대의 약가가 큰 걸림돌이다.
CAR-T 치료제 역시 급여가 적용되고 있지만, 환자 접근성은 제한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CAR-T 치료가 가능한 기관은 전국 14곳에 불과하기 때문.
"CAR-T 센터를 운영하려면 세포 채집 같은 과정을 전담할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건비와 관리 비용이 상당히 부담되지요. 세포 채집 인프라는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병원이 이미 공간 부족으로 포화 상태라 새로운 시설을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형 병원이라 하더라도 채집 장비를 추가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실제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이중특이항체는 CAR-T 치료제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CAR-T 치료제든 이중특이항체든 결국 환자가 접근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지금처럼 치료 기회 자체가 제한된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급여 정책, 혈액암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최 교수는 "DLBCL은 하나의 질병으로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이질적"이라며 "따라서 DLBCL의 치료 옵션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두세 차례 재발해 예후가 불량하다고 여겨졌던 환자도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경우가 있으며, 어떤 치료제든 반응을 보이는 환자가 반드시 있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최 교수는 현재의 급여 정책이 혈액암 특성을 좀 더 반영할 수 있게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혈액암은 일반 고형암과 달리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신약 허가 및 급여 평가 시 전체생존기간(OS)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데, 이는 혈액암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형암의 경우 후속 치료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3~5개월의 OS 개선만으로도 신뢰도 높은 유의미한 데이터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혈액암은 3차 치료 이후에도 다른 구제요법에 일정 부분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신약 하나가 보여주는 순수한 OS 개선 효과가 후속 치료의 영향으로 희석되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
"지금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신약들이 급여의 장벽을 넘지 못할 겁니다."
DLBCL 환자에게 치료제의 선택은 곧 시간과의 싸움이다. CAR-T 치료제는 장기 생존의 희망을 주지만, 기다릴 수 없는 환자에게는 '그림 속의 떡'이다. 반면 이중특이항체는 즉시 투여 가능성을 무기로 새로운 생존 기회를 제공한다.
"환자가 오늘 내일을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치료 옵션이 보험 급여권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